5. 도시의 화려한 불빛 그리고 하늘의 별빛

성공을 위한 균형의 미학 5. 내면과 외면을 보는 판단의 기준

세상의 수많은 사람들이 “화려함”이라는 박스에 갇혀 있다.  도시의 화려한 불빛에 가려 하늘에 별이 보여주는 그 가슴 따듯한 아름다움을 보지 못하고 살고 있는 것이다.

화려함을 보여주기 위한 소유에 대한 욕망을 채우기 위해 어떤 귀한 가치도 굴절시키기를 마다하지 않고 있다.  소유의 많고 적음이 인간 존재의 핵심 가치를 측정하는 잣대가 되어 소유가 보여주는 화려함을 기준으로 다른 인격체를 판단하기도 한다.  성공의 개념도 변질되고 뒤틀려져 가치의 완성이 아니라 소유를 통한 화려함을 자랑하고 보여주며 선망의 대상이 되는 것이 성공으로 여겨지는 세대가 되어져 가고 있다.  그리고 그것이 가능한 사람은 그렇지 못한 사람위에 군림해도 되는 것처럼 여겨지는 세상으로 변해가고 있는 것이다.  이것에 마음이 쓰이는 이유는 소유가 보여주는 화려함 속에서는 도덕과 윤리의 가치가 무너지고 선과 악의 경계마저 희미해지고 있는 현상이 마음 아프기 때문이다.

일제와 6.25의 시대를 지나야만 했던 지난 세대! 그토록 참혹한 가난의 세월속에서 먹고 살기 위해 버티고 견디는 삶을 살아오며 지쳐버린 어른들의 세대가 “내면의 가치와 인격으로 스스로를 평가받겠다.”는 자존감을 포기한 것은 그렇다 치더라도 세상이 제시하는 박스를 거부하며 구세대의 습성에 저항하고 미래를 꿈꾸며 변화를 추구해야 하는 젊은이들조차 그 화려함이라는 박스속에 주저앉아 버리는 현실을 보는 것은 가슴 아픈 일이다.  최소한 젊다는 것은 “화려함”이 아니라 “가치”에 의해 평가받겠다는 자아 가치 측정에 대한 고집과 자신감, 자존감과 자부심을 가져야 하는 것이 아닐까?  “내가 가진 것”이 아니라 “나라는 인간 자체”를 평가하라고 외칠 수 있는 젊음의 자신감이 퇴색되어져 가는 모습이 하나의 사회적 현상이 되어져 가고 있음이 안타깝다.

물론 화려함이 나쁘다는 것도 아니고 소유가 나쁘다는 것도 아니다.  이왕이면 선망의 대상이 되어 사는 삶도 살아 볼만한 삶인 것은 분명하다.  다만 그것이 인간이라는 존재의 가치를 측정하는 잣대가 아니기를 바랄 뿐이다.  소유와 보여주기, 생활 수준과 같은 외면적인 것들 만이 아니라 삶의 가치관과 철학, 삶의 질과 같은 내면적인 것으로도 선망의 대상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본다.  그저 보여지는 도시의 화려함에 가려 하늘의 별이 보여주는 아름다움을 놓치고 사는 삶이 되지 않기를 바라는 것이다.  한 평생을 살아가며 도시의 화려함과 더불어 하늘의 별이 주는 아름다움도 볼 줄 아는 균형감이 있었으면 하는 것이다.

도시의 화려한 불빛만이 아니라 하늘의 별빛도 함께 바라볼 수 있는 그런 젊은이들을 더 많이 만나보고 싶다.

최소한 한 인간으로서의 존재 가치에 대해서만큼은 외면적 화려함이 아니라 내면적 가치에 의해 판단 받고 싶고, 판단하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러한 가치관과 신념, 마음과 영혼을 가진 그런 젊은이들을 더 많이 만나보고 싶다.  특히나 도시의 화려한 불빛만이 아니라 하늘의 별빛도 함께 바라볼 수 있는 그런 젊은이들을 더 많이 만나보고 싶은 것이다.

질문합니다.

  • 그동안 당신의 선망의 대상 중에 혹시 그의 내면적인 부분도 부러웠던 사람이 있었는가? 만약 그렇다면 그것은 무엇이었는가?
  • 외면의 어떤 부분에 있어서 부러움의 대상이 되고 싶은가?
  • 내면의 어떤 부분에 있어서 부러움의 대상이 되고 싶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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