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천이 운영하는 식장이나 기업, 가정에 많이 붙어있는 팻말입니다. 개업을 하거나 이사를 하면 크리스천들이 많이 주고받는 선물 중 하나이기도 할 것입니다. 만약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이 크리스천이라면 집에 하나쯤 붙어 있을지도 모릅니다. 분명 어디인가에 걸려 있는 이것을 한두번은 본적이 분명 있을 겁니다.
저는 몇 일전 어느 업체 상담을 하러 갔다가 이것이 걸려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하지만 부하 직원을 대하는 사장님의 태도를 보면서 “차라리 저런 것을 붙이지나 말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누구를 위한 창대함을 위해 저것을 벽에 다 저렇게 붙여 놓았는가 라는 것에 대한 의구심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저런 말씀을 붙인 곳이라면 최소한 이곳에서 일하는 직원들도 자신들의 미래가 이곳에서 일함으로 창대 해 질 수 있다는 정도의 희망을 가질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고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다니다 보면 식당에도 이것이 걸려 있는 것을 볼 때도 종종 있습니다. 이러한 팻말이 붙어있는 크리스천이 운영하는 식당이라면 그에 어울리는 음식과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어야 한다는 것은 그리 설명이 필요 없는 기대감일 것입니다. 만약 아니라면 그곳에 붙여진 그 말씀은 말씀이 아니라 그저 대박을 기원하는 욕심을 표현하는 부적과 같은 것으로 추락하게 된다는 생각이 듭니다.
“시작은 미약하나 나중에는 창대하리라!”는 말씀이 그저 대박을 기원하는 부적과도 같은 것이 아니기를 바랍니다. 그 말씀은 하나님의 내어 주심으로 고난 받는 욥에게 수아 사람 빌닷이 훈계하면 하는 말 중 하나였습니다. 그저 대박나라고 기원하는 부적과 같은 말은 아니었습니다.
새언약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창대함을 바란다면 기억해야 하는 것은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요한3서 1:2)” 말씀입니다. 영혼의 잘됨이 범사가 잘되는 기준인 것이 바로 크리스천의 삶입니다. 그리고 영혼이 잘됨은 산제사로 변화된 삶을 사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로마서 12:1~2).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에서 시작되는 것입니다.
기도합니다.
“’이기적 창대함’을 바라는 마음을 버리게 하시고, 영혼이 잘됨에 먼저 충실하게 하시어 그로 인해 허락하시는 범사가 잘되는 주가 주시는 축복을 체험하게 하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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