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지로라도…

리더십을 이야기하면서 빼어 놓을 수 없는 명제 중 하나는 “원칙”이라는 것입니다.  원칙 중심의 리더십에 관한 책들도 많고 이런 저런 강의도 정말 많습니다.  신문지상을 통해 많이 보게 되는 화이트컬러 범죄도 그렇고, 우리가 리더들에게 실망하고 돌아서는 이유도 그렇고, 부모에게 실망하거나 선생님들에게 실망하는 이유도 그렇고, 이런저런 리더들에게 실망하는 많은 경우도 그들의 말과 행동, 결정과 일하는 방식이 원칙중심이 아닌 것에서 오는 경우가 많을 겁니다.

때로는 융통성이라는 편리함으로, 때로는 좋은 게 좋다는 게으름 등으로 만들어지는 비리와 불공평에 신뢰는 떨어지고 가정은 깨어지며 사회는 병들기도 합니다.  그렇기에 조금은 불편하더라도 원칙이라는 것은 지켜져야 합니다.  리더가 지켜야 하는 이러저러한 중요한 덕목 중 하나가 원칙 중심이라는 것에 반대하는 분도 없을 것입니다.  능력이 조금 부족해도, 조금 차갑게 느껴지더라도 원칙을 지키는 리더를 우리는 따라가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요나에게서 배운다.

사실 원칙이라는 것은 때로는 불편하기도 하거니와 끈임 없는 훈련이 필요한 것이기도 합니다.  인간의 속성을 알기에 어찌보면 평생을 두고 싸워서 지켜야 하는 가치라는 생각을 해보기도 합니다.  세월속에 희석되기도 하고, 여러 형태로 다가오는 유혹은 때에 따라서는 어느 것이 원칙인지 혼란스럽기도 한 것이기에 특히 리더들은 항시 깨어 있음으로 스스로를 경계하고 있어야 할 것입니다.

저는 요나를 보며 억지로라도 원칙에 중심을 두고 있어야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배웁니다.  요나는 멸망의 메시지를 들고 니느웨로 가라는 하나님의 명령에도 불구하고 도망치다가 결국에는 불순종의 벌로 고기 뱃속으로 들어갔던 선지자 입니다. 얼마나 하기 싫었으면 선지자였던 그가 그렇게 도망을 가게 되었을까요?

너는 일어나 저 큰 성읍 니느웨로 가서 그것을 향하여 외치라 그 악독이 내 앞에 상달되었음이니라 하시니라. 그러나 요나가 여호와의 얼굴을 피하려고 일어나 다시스로 도망하려 하여 욥바로 내려갔더니 마침 다시스로 가는 배를 만난지라 여호와의 얼굴을 피하여 그들과 함께 다시스로 가려고 배삯을 주고 배에 올랐더라.

요나서 1:2~3

하지만 그는 결국에는 니느웨로 갑니다.  고기의 뱃속에 들어가 회개하고 결국에는 그렇게 가기 싫었던 그곳까지 가게 됩니다. (나는 감사하는 목소리로 주께 제사를 드리며 나의 서원을 주께 갚겠나이다 구원은 여호와께 속하였나이다 하니라. 여호와께서 그 물고기에게 말씀하시매 요나를 육지에 토하니라. 요나서 2:9~10).   그가 여호와의 명령데로 니느웨로 가는 그 길은 아마도 순종의 길이 아니라 어쩔 수 없어서 가는 복종의 길이었을 것입니다.  불순종에 응징하시는 여호와가 무섭고 두려워서 억지로 하는 순종이 아닌 복종으로, 좋아서가 아니라 억지로 하는 행동이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의 그 복종으로 니느웨는 죄에서 돌이키는 기회를 제공받게 됩니다.

요나의 역사를 보며 순종이던 복종이던 하나님의 명하신 일을 하기만 하면 뒷일은 하나님께서 하신다는 것을 보게 됩니다.  한마디로 순종이던 복종이던 내가 하기만 하면 결과는 하나님께서 책임지신다는 것입니다.  즉 억지로라도, 순종이 아닌 복종이라도, 행하는 행위는 내 몫이지만 결과는 하나님의 몫이 된다는 것입니다.

크리스천 리더라면 더욱 중요하다.

저는 그것을 일상적인 삶 속에서도, 특히 우리들의 일터에서도 그것을 봅니다.  원칙, 특히 대명제인 “골든 룰 – 대접받고 싶은 데로 대접하라!”는 것들과 같은 것들이 당장은 손해 보는 거 같고, 바보처럼 느껴지고, 때론 그 결과에 대한 두려움이 있을 수도 있지만 원칙에 충실할 때 우리는 올바른 열매를 거두게 될 것입니다.  특히 세상의 리더들과는 목표도 달라야 하지만 과정 또한 달라야 하는 크리스천 리더에게 있어서 원칙에 충실함은 억지로라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좋고 싫고의 문제도 아니고 효율성의 문제도 아닙니다.  이것은 하나님께 영광이 되느냐 마느냐의 문제이며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결과를 향해 달려가는 크리스천 리더들에게는 무조건적으로 요구되는 것이라 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억지로라도… 훈련이 필요하다.

물론 원칙을 지키는 삶, 원칙을 지키는 리더십이라는 것을 항상 기쁜 마음으로 하면 좋겠지만 솔직히 항상 그렇게 한다는 것은 비현실적인 이상에 불과할 것입니다.  크리스천 리더에게 순종은 원칙이지만 도망을 치는 요나와 같은 모습을 보게 되는 것 또한 현실입니다.  그렇기에 때로는 억지로라도 원칙에 중심을 둔 삶을 사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순종이 되지 않으면 복종이라도 하고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순종이던 복종이던 원칙에 의거하는 반복과 훈련을 통해 크리스천 리더로서의 우리는 그것이 주는 결과의 맛도 보게 될 것입니다.

훈련은 라이프스타일을 바꾼다.

반복과 훈련을 통해 우리의 습성은 바뀔 수 있습니다.  진상고객에게 이윤을 생각하는 판매자로서가 아니라 그리스도인으로서 대하는 훈련이 필요하고, 음해하는 자에게 정당하다 생각되는 보복이 아닌 사랑과 용서를 생각하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자녀를 키우는 기준도 내 기준이 아니라 하나님이 기준이 되어야 하고, 성공의 기준도 내 생활수준의 높아짐이 아니라 하나님의 목표 성취를 통한 삶의 질적 향상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은 끈임 없는 반복과 훈련을 통한 변화를 통해 바뀌어 지는 습성을 통해 가능하게 될 것입니다.

분명 이러한 것들은 불편합니다.  때로는 짜증스럽기도 하고 효율성도 떨어지고 미련하다고 느낄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하는 훈련, 절제하는 훈련, 거짓을 고하지 않는 훈련, 용서하는 훈련 등이 필요합니다.  성령의 열매 중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리스도인이라면 성령의 열매를 맺어야 하는 것이 원칙이고 그것은 모두 배움이 필요하고 훈련이 필요합니다.  물론 그러한 모든 과정속에 성령의 간섭하심, 훈련하심, 도우심도 존재하지만 그 과정을 견뎌야 하는 우리의 결단과 헌신 또한 분명 필요합니다.  그 십자가를 지고 갈 수 있어야 제자라 할 수 있을 것이고 그 안에서 조금씩 이라도 성장하고 있어야 크리스천 리더로서의 성장하여 역할을 감당하고 책임을 완수할 수 있을 것입니다.

마무리합니다.

어떤 고민을 하고 계십니까?  그것을 분석하고 방향성을 결정함에 있어서 지켜져야 하는 원칙은 무엇입니까?  예외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 고민을 풀어감에 있어서 지켜져야 하는 원칙은 분명 존재합니다.  억지로라도 그것을 지키며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선하신 역사하심을 체험하는 우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기도합니다.

“오늘 하루도 원칙에 충실할 수 있도록 도우시옵소서.  억지로라도, 순종을 하던 복종을 하던 훈련하며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주옵시고 그 안에서 주님이 이루시는 역사를 체험하는 은혜를 허락 하옵소서.”

억지로라도…”에 대한 답글 1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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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너무 공감하는 내용입니다
    아이들에게도 전하고 싶은 현실적인이고 직접적인 신앙의 조언입니다

    요즘 기도하는 내용
    ‘저에게 있어서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일은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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