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서 인간에게 하신 첫 번째 질문입니다.
죄를 범하고 숨어 있는 아담을 하나님께서 부르시며 어디 있느냐고 질문을 하고 계신 것입니다. 하지만 “네가 어디 있느냐?”는 질문은 하나님께서 하신 질문 치고는 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미 모든 것을 다 아시는 하나님이 아담이 어디 있는지 몰라서 그런 질문을 하셨을까? 라는 생각이 들며 그 질문의 WHY를 생각해 보게 되는 것입니다.
현실인식을 위한 질문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어디 있느냐고 하신 첫 질문은 육체의 위치를 물어보는 것이 아니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담의 위치, 상태 등의 모든 것을 다 아시는 하나님이 굳이 아담의 위치가 알고 싶어 그런 질문을 하실 이유가 없기 때문입니다. 보니 하나님의 질문, “네가 어디 있느냐?”라는 말은 히브리어로 보니 “아예카(ayeka)”라는 단어가 사용되었고 그 본 뜻은 위치를 물어보는 것이 아니라 아담의 죄로 인해 하나님과의 교제가 끊어진 현실에 대한 비탄의 음성으로 아담에게는 현재 주어진 현재 상태에 관한 질문, 즉 현재 영적 상태를 스스로가 자각하고 있는지에 관한 내용의 질문이었습니다. 한마디로 아담이 도대체 무슨 짓을 했는지 스스로 알고 있는지? 그 현실의 심각성을 아담이 깨닫고 있는지에 관한 질문이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 질문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해당되는 질문이기도 합니다. 삶을 살아가며 성과를 내야하고, 결과를 만들며 성공을 꿈꾸는 우리들, 자기 계발과 같은 자기 발전을 생각하고, 오늘보다는 내일이 더욱 나아지기를 계획하고 노력하며 우리는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렇게 어느 목적지를 향해 가고 있는 우리에게 “출발지가 어디인가?” 라는 현실인식의 질문은 “자기진단”의 관점에서도 너무 중요한 질문입니다. 서울을 향해 간다면 출발지가 부산이면 북으로 가야할 것이요, 인천이 출발지라면 동으로 가야하는 것과 같은 이치인 것입니다.
그렇게 어느 정한 목적지에 도달하려면 어디에서 출발하는지를 정확히 알아야 합니다. 출발지를 알아야 올바른 방향설정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멋지고 훌륭한 목표를 가진 사람들 중에 출발지에 대한 분석의 미숙함으로 잘못된 방향성을 가지게 되어 실패하는 경우도 보았습니다. 꿈과 비전, 열정, 가치, 성실함 등과 같은 좋은 것들을 다 가지고 출발지의 분석이 제대로 되지 않아 방향성의 혼란함 속에서 귀한 삶을 낭비하지는 말아야 할 것입니다. 그렇기에 스스로에게 끈임 없이 해야 하는 질문이 바로 “나는 어디에 있는가?” 라는 현실인식에 관한 질문일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 유지에 실패한 아담이 알아야 할 것이 바로 그러한 현실 인식이었습니다.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를 본인이 알고 있어야 깨어진 하나님과의 관계 형성의 회복이 가능하고 변화와 성장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아담에게 어디 있느냐고 묻고 계신 것입니다. 그것을 알아야 아담은 그에게 필요한 변화와 성장의 방향성을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어디에 있는가?
긍정적이 되지도, 비관적이 되지도 마십시오.
정확한 현실인식이 정확한 진단을 가능하게 합니다. 하지만 많은 분들이 현실을 바라봄에 있어서 긍정적이 되거나 비관적이 되는 함정에 빠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특히 안타까운 것은 긍정적인 사람이 긍정의 함정에 빠져 같은 실수를 반복하면서 같은 실패를 반복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때로는 비관적인 사람이 그 비관의 함정에 빠져 우울증과 같은 자기 파괴적인 길을 들어서는 것을 보기도 합니다.
현실은 있는 현실 그대로를 보아야 합니다. 현실직시라는 말은 더 하지도 빼지도 말고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라는 것을 의미하는 말입니다. 긍정적으로도 말고, 비관적으로도 말고, 딱 현실 그만큼만 보는 것입니다. 그래야 정확한 진단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진단이 정확해야 정확한 교정의 방향과 방법이 잡히게 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물론 현실을 직시한다는 것이 그리 쉽지 만은 않습니다. 아마도 가장 큰 방해물은 본인의 습성, 고집, 경험, 감정, 자라온 배경, 학습된 논리 등과 같은 시간속에서 쌓이게 된 내재된 많은 것들일 것입니다. 즉 자신이 지금까지 쌓아온 많은 것들이 자신의 가장 큰 방해물이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때로는 도움이 필요하다.
그래서 우리는 의도적인 노력이 필요합니다. 제3의 관점을 가지기 위해 책도 보고, 좋은 강의를 찾아 듣기도 할 것이며 선생, 멘토, 코치, 선배 등과 같은 분들을 찾아 도움을 청하기도 합니다. 어떤 형태이건 다른 관점에서 나를 바라보게 하고 생각하게 하는 도움이 필요한 것입니다.
멘토의 경우 멘토가 가진 여러 역할 중 가장 큰 역할은 기억나게 돕는 것입니다. 멘토는 “현실 직시”에 대한 질문과 생각의 기회를 제공함으로 현실을 올바로 볼 수 있도록 돕습니다. 멘토는 그러한 기능을 통해 목표를 기억하고, 방향을 기억하도록 돕는 역할을 감당하는 것입니다. 때로는 그들과의 대화가 감정을 상하게도 하고 자존심을 건드리는 일이 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멘토와 같은 돕는 존재는 누구에게나 필요한 존재입니다.
우리는 때로는 성령님이, 때로는 말씀속에서, 때로는 하나님이 허락하신 주변 사람들을 통해서도 멘토링을 제공받습니다. 하나님이 아담에게 어디 있느냐고 질문하듯 그런 질문을 해주는 존재가 옆에 있는 것이 축복임에 분명합니다. 그리고 그런 존재가 옆에 있다는 것은 아직 기회가 있다는 증거일 것이며 감사의 이유가 충분히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질문합니다.
- 어디에 계십니까?
- 그대로 있어도 괜찮은 겁니까?
- 이대로 이렇게 세월이 흘러도 괜찮은 겁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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