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 사랑하는 가족 친지 친구들과 함께 복된 성탄을 보내고 신년을 준비하는 마음으로 이리저리 분주한 계절이다. 성탄이면 예수님이 주인공인 만큼 아기 예수에 관한 이야기가 가장 많이 나누는 이야기가 되겠지만 그 외에도 더불어 생각나는 두 개의 스토리가 있습니다. 하나는 물론 동방박사들에 관한 이야기이고 또 다른 하나는 크리스마스마다 재방송되기도 하는 영화, 찰스 디킨스의 크리스마스 캐롤, 즉 스쿠르지에 관한 이야기일 것이다.
스쿠르지에 관한 이야기는 얼마전 자기계발과 리더십에 관한 강의를 하던 중 변화에 관한 이야기를 하면서 행동교정학적인 측면에서 나누었던 기억이 난다. 인간이 변할 수 있는가에 대한 질문을 나누며 자의든 타의든 변화할 수밖에 없는 상황과 판단이 존재한다면 가능하다는 내용이었다.
오늘은 동방박사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동방 박사는 과연 몇명이 왔을까?”에서 시작해서 (성경에는 세 사람이었다는 이야기는 없다.) “동방이 어디일까?”, “먼 거리일 텐데 얼마나 걸렸을까?” 등을 논쟁하기도 하고 그들이 가져온 선물들이 그 당시 가치로 얼마나 큰 것이며 그 각 선물들이 가진 의미에 관해 이야기를 하기도 한다.
그 모든 궁금증과 각자가 이야기하는 나름의 논리와 결론들은 충분히 흥미롭고 그 논쟁이 어느 정도의 가치도 있다 생각한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그 동방박사들의 ‘WHY’가 아닌가? 라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동방박사들의 ‘WHY’
동방 박사들이 몇명이 왔든, 어디서 왔든, 얼마나 걸려서 왔든, 무엇을 가지고 왔든, 그들은 왔다. 가장 중요한 것은 그들이 왜 왔느냐? 는 것일 텐데 그들은 헤롯 앞에서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냐 우리가 동방에서 그의 별을 보고 그에게 경배하러 왔노라 하니 (마태복음 2:2)”라고 하며 분명한 그들의 “WHY”를 밝혔다. 그들은 왕으로 오신 아기 예수를 인정하고 경배하러 먼 길을 온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헤롯에게도 분명한 그들의 ‘WHY’를 밝혔으며 (8절), 11절에서 우리는 그들의 “WHY”가 현실화된 것을 보게 된다.
“집에 들어가 아기와 그의 어머니 마리아가 함께 있는 것을 보고 엎드려 아기께 경배하고 보배합을 열어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리니라.”
-마태복음 2:11
우리에게 가름침이 되는 것은 그들이 몇 명이었고, 어디서 왔고, 얼마나 먼 고난의 길을 왔으며, 어떤 선물을 가지고 왔는가?가 핵심은 아닐 것이다. 핵심은 그들의 “WHY” 즉 예수님이 왕으로 오셨다는 것을 인정하고 경배하는 바로 그 모습이다. 성탄을 대하는 우리의 “WHY”가 그들의 “WHY”와 같을 때 성탄절은 참으로 의미 있고 은혜가 되는 절기가 되리라 확신한다. 잘못하여 그 “WHY”에서 벗어나 주변 것들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지게 되거나 에너지를 낭비하게 된다면 그것은 성탄이 주는 핵심 가치를 놓치게 되는 실수를 범하게 될 것이다. 은혜는 줄 것이고 축복은 멀어질 것이며 자녀들은 말씀속에서 자라기 힘들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탄을 축하하는 “WHY”의 정확한 분별은 필요한 것이다.
헤롯의 “WHY”
반면 헤롯도 동방박사들과 비슷한 “말”을 하며 그의 “WHY”를 이야기한다.
“베들레헴으로 보내며 이르되 가서 아기에 대하여 자세히 알아보고 찾거든 내게 고하여 나도 가서 그에게 경배하게 하라.”
마태복음 2:8
말씀에서 보이는 것처럼 동방박사들로부터 경배를 하러 왔다는 이야기를 들은 헤롯은 그곳이 어디인지 알려 달라 하며 자신도 가서 경배하겠다고 한다. “경배를 하겠다!”는 말 자체는 같은 말이지만 그의 “WHY”는 자신의 위치를 불안하게 만드는 대상을 제거하는 것이었다. 즉 그의 “경배를 하겠다”는 말은 지극히 정치적인 발언이었고 자신의 목표 성취를 위한 간계였던 것이다. 분명 그러한 헤롯은 동방박사들에게 친절했을 것이고, 배려와 더불어 진실해 보였을지도 모른다는 상상도 된다. 하지만 그는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자신의 권력과 위치를 지키기 위한 목적으로 아기 예수를 제거하는 방법으로 수많은 아기들을 죽이는 참상을 저지르는 인물이었다. 시간 속에서 그의 “경배하겠다”는 말은 그의 “WHY”가 아니었음을 그의 행동은 통해 증명되었다.
그렇다. “말”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세상에는 말 잘하는 사람들이 정말 많다. 언어의 연금술사라는 표현도 있고, 화려한 언변으로 사람을 홀리는 사람들이 세상에는 정말 많다. 사기꾼들의 말을 들어보라! 때로는 좋은 언변으로 때로는 어눌하게 말을 사용하면서 믿을 수 있게끔 말을 한다. 그러니 수많은 사람들이 속고 또 속는 것이다. 그러니 그들이 말하는 모든 것, 특히 그들의 “WHY”는 검증이 필요한 것이다.
“WHY”의 검증
나의 북클럽도 물론이거니와 거의 모든 교육과 강의를 “올바르고 선명한 ‘WHY’의 정립”을 중심으로 하고자 노력한다. 인생의 “WHY”를 안다는 것은 출발점과 목적지를 아는 것이며 존재 가치를 정립하고 자신의 차별화를 가져오기 때문이다. “WHY”를 통한 교감과 관계 형성이 공동체의 생사를 좌우한다 해도 과하지 않을 것이고, 수많은 세계적 기업들도 그들의 “WHY”를 중심으로 그들의 문화를 만들려 노력하고 있다.
“WHY”를 말하는 사람과 기업의 말을 들어보라. 그 어느 누구도, 어느 기업도 나쁜 “WHY”를 이야기하는 기업은 없다. 사랑과 평화, 나눔과 같은 가치를 이야기하고 기여와 가치를 이야기하며 존재의 가치와 방향성을 이야기한다. 선함과 가슴 벅차게 들리는 미래를 모두 이야기하는 것이다. 영광된 독일을 이야기하던 히틀러는 전쟁광이 되어 결국에는 독일을 전쟁 폐허로 만들고 동독과 서독의 분단 국가로 만들었다. 개척과 문명화를 내세우며 일본은 한국과 여러 주변 국가들을 침략하고 식민지화 하였다. 이처럼 “말”로서 내세우는 “WHY”는 언제나 멋지고 이상적인 것들이다.
그래서 “WHY”의 검증이 필요한 것이다. 그 검증은 “HOW”와 “WHAT”, 그리고 시간에 의해 검증된다. 즉 무엇을, 어떻게 시간속에서 하느냐는 행위를 통한 검증인 것이다. 시간이라는 터널을 지나며 무엇을 어떻게 하는가 라는 것을 관찰함으로 그의 “WHY”가 증명되는 것이다.
동방박사들의 “WHY”는 그들의 행동으로 증명되었다. 말씀에서 그들의 귀향길은 “그들은 꿈에 헤롯에게로 돌아가지 말라 지시하심을 받아 다른 길로 고국에 돌아가니라 (마2:12)”’ 로 정리된다. 유대 땅의 통치자였던 헤롯에게 돌아가 그들이 아기 예수를 찾았으니 가보라고 너스레를 떠는 일도 하지 않았다. 헤롯에게 상을 받을 수도 있고 먼 길을 왔으니 멋진 대접을 받을 수도 있었을 텐데 말이다. 그리고 그들의 “WHY”를 마무리하고 조용히 고국으로 돌아갔다. 그들은 그렇게 시간속에서 경배함과 고국으로 돌아가는 무엇을 이라는 WHAT 을 순종함이라는 HOW를 통해 그들의 “WHY”를 증명한 것이다.
우리는 어떤가? 인생의 “WHY”, 하나님이 주신 “WHY”를 제대로 보지 못하고 주변 것들에 관한 논쟁으로 세월을 낭비하고 있는 사람들도 많다. 어떤 사람은 헤롯처럼 말도 화려하고 명분도 있어 보이지만 그의 진정한 “WHY”는 자신의 욕망인 사람도 있다. 때로는 헤롯처럼 의도적인 “WHY”를 이야기할 수도 있고 자신도 무엇이라 정확히 표현하기 힘든 욕심과 이기심이 숨어 있을 수도 있다. 인간이라는 존재 자체가 충분히 그럴 수 있는 존재이다.
이 복된 성탄의 시간에 동방박사와 헤롯의 “WHY”를 비교해보고 시간속에서의 그들의 “WHAT”과 “HOW”를 비교해 보며 자신의 모습을 진단해 보면 좋겠다. 가끔 멈추어 자신의 “WHY”에 대한 질문을 해 보아야 한다. “혹시 화려하고, 듣기 좋고, 멋져 보이는 “WHY” 뒤에 혹시 숨은 의도는 없는가?” “자신이 말하는 “WHY”의 출발점이 욕심을 채우기 위한 교활함은 아닌가?” “혹시 말씀을 나누고 주의 이름을 부르면서 자신의 욕심을 채우고 있지는 않은가?”라는 질문들을 해보는 자기 점검의 시간과 묵상, 그리고 기도의 시간이 필요한 것이다.
이왕이면 주가 보시기에 좋은 “WHY”를 가지고 “WHAT”과 “HOW”를 시간속에서 증명하여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할찌어다 (마태복음 25:23)”라는 칭찬을 듣는 크리스천 리더가 되었으면 좋겠다.
기도합니다.
“주변의 것들에 정신이 팔려 주신 삶의 ‘WHY’에 대한 초점을 잃지 않게 하시고 ‘말’에 현혹되지 않게 하심은 물론 ‘말’로 현혹하는 범죄도 짓지 않도록 마음을 종의 마음을 지키시옵소서. 깨달음을 통해 주신 제 인생의 ‘WHY’를 행동과 결과로 증명하며 사는 승리의 삶이 되게 하시고 그런 크리스천 리더로서의 모범이 되는 축복을 더 하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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