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업을 하다 보면 두개의 계약, 두개의 조건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경우가 생기고 사회 생활을 하다 보면 어떤 제안을 받아 그 선택을 놓고 심사숙고해야 하는 순간도 생긴다. 학생이라면 두어 개의 학교 중 선택해야 하는 선택의 갈림길에 놓이기도 한다. 한 과정을 졸업하고 또 석사 또는 박사 학위에 도전해야 할지를 놓고 갈등을 하기도 한다. 젊은 청춘이 좋은 배우자감을 만나 결혼을 해야 하나 말아야 고민을 하기도 한다. 식당을 운영한다면 어떤 메뉴를 추가하거나 빼거나 하는 결정을 해야 하는 경우도 발생한다. 그렇게 우리는 우리의 삶속에서 판단과 선택이 요구되는 상황에 처하게 되는 경우가 참 많다.
컨설팅을 하고 멘토링을 하며 보탬이 되는 삶을 살겠다고 다짐하며 사는 나도 년 평균 2~3건 이상의 사업적 제안을 받다 보면 혼란스러움을 경험을 하게도 된다. 한번은 또 하나의 제안을 미국에 있는 친구로부터 받았습니다. 거의 20년에 가까운 세월을 알고 지낸 능력 있는 친구가 새로운 회사를 창립한다며 함께 해보자는 제안이었다. 인간이다 보니 자신도 모르게 주판을 튕기며 자연스럽게 계산을 하게 된다. 나름 “내게 더 좋은 것”이 어느 것인가 라는 생각을 하며 계산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 연락을 받고는 하루 종일 머리가 복잡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묵상을 하며 기도 중에 “너는 내게 좋은 것은 도무지 관심이 없니?”라는 주님의 옆구리 찌르심을 당하였다.
맞다. 선택의 순간에 세상의 리더라면 “내게 좋은 것”을 생각하고 계산하는 것이 당연할지 모릅니다. 하지만 크리스천 리더라는 나는 “주님께 좋은 것”을 먼저 생각해야 하는 것이었다. 판단과 선택의 기준이 “주님께 좋은 것”이 되어야 하는 것이 크리스천 리더이기 때문이다. 내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나보다 더 잘 아시는 분이 주님이시고, 내게 복 주기를 원하는 분이 주님이신 것을 믿으며, 내 뜻이 아니라 주님의 뜻을 이루는 것이 우선되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는 크리스천 리더라면 당연히 선택과 판단의 기준이 그래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나에게 좋은 것”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 그것이 때로는 상황으로 다가오고, 때로는 물질로, 때로는 어떤 직책으로, 때로는 방향성으로 다가온다. 대부분의 경우 “나에게 좋을 것”을 선택하고 그것을 따라가며 그것을 쟁취하려고 시간과 에너지를 투자하며 전념한다. 이 모습은 선악과를 따먹던 하와의 모습과 다르지 않다.
새로운 선택의 길목에 서서 어느 한쪽을 선택해야 하는 자에게 하나님은 열왕기상 18장 21절을 통해 도전하신다. 무엇을 망설이느냐? 하나님과 우상 중 어느 것을 택하려 하느냐? 라는 질문으로 도전하고 계신 것이다. 크리스천 리더가 가져야 하는 선택의 기준에 대한 질문을 하고 계신 것이다.
수많은 선택이 이어지는 삶속에서 “너에게 좋은 것? 하나님께 좋은 것? 어느 것을 선택하고 따를 것이냐? 선택하라!”라는 질문과 도전의 말씀을 기억해야 한다. 선택의 순간에 “주님께 좋은 것”을 먼저 생각하고 판단할 줄 아는 성숙한 리더로 살아가는 우리가 되기를 기도해 봅니다. 선택의 순간에 하와의 판단 기준처럼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자신을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러운 (창세기 3:6)”이라는 자신에게 좋은 것이 아니라 주님에게 좋은 것, 주님이 기뻐하실 만한 것을 기준으로 판단하는 크리스천 리더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그런즉 우리는 몸으로 있든지 떠나든지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가 되기를 힘쓰노라”
– 고린도후서 5: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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