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리더십 2. 겸손의 리더십
Theme 2-2. 겸손으로 시작된 구원의 역사
앞 글에서는 하와에게 던져진 유혹과 그 과정을 통해 “교만으로 시작된 죄의 역사”를 보았습니다. 그리고 이제 예수님의 “겸손으로 시작된 구원의 역사”를 살펴보려 합니다. 그렇게 대조되는 “교만”과 “겸손”의 차이점도 놀라운 일이지만 이를 통해 보여주시는 예수님의 마음을 보았으면 하는 바램도 있습니다. 예수님의 그 마음은 성직자이든 평신도이든 어떤 자리나 타이틀의 문제가 아니라 부르심을 받은 모든 크리스천 리더들이 가져야 하는 마음입니다. 우리 하나하나를 정해진 곳에 세우심에는 하나님의 이유가 있고 우리 모두는 각자가 하나의 지체로서 감당해야 하는 책임이 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주어진 사명에 어떻게 반응하시며 어떤 선택과 어떤 자세로 상황상황의 일들을 감당하시는 가를 보고 배움을 통해 우리는 주시는 사명을 받는 이의 올바른 자세에 대한 선명한 신앙적 이해가 가능할 것입니다. 하나님을 주라 섬기는 모든 자가 가져야 하는 예수님의 마음, 부르심을 받은 모든 자가 가져야 하는 예수님의 마음, “예수 닮는 삶”을 추구하는 모든 믿는 자들이 이해해야 하고, 묵상해야 하고, 받아들여야 하고, 실천해야 하고, 훈련해야 하며, 삶속에서 드러나야 하는 예수님의 그 마음을 묵상하는 마음으로 주님 사역의 출발점부터 함께 나누어 보려 합니다.
“목적 중심의 리더십”을 나누며 예수님의 분명한 WHY는 그를 보내신 이가 가진 세상 구원이라는 소원을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요한복음 3:16) 이루어 드린다는 명확하고 분명하게 제시된 사명과 그것의 성취를 향한 분명한 목적을 가진 목적 중심의 리더로서의 참 모습에 관해 나누어 봤었습니다. “목적 중심의 리더십”이 리더의 비전과 미션, 사명 전체에 대한 간절함과 사명자로서의 정체성 등에 관한 존재론적인 부분이라면 “겸손의 리더십”은 목적을 이루기 위한 행위에 작용하는 근본 성품과 행동과 판단에 작용하는 가치 기준에 대한 행동학적 부분을 보는 것이라 할 것입니다. 즉 그의 마음이 어떻게 작용하며, 어떤 사안에 대한 결정 또는 문제 해결 방식, 행동 방식의 원천적 가치 결정 체계를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라는 것입니다.
겸손으로 시작된 구원의 역사
예수님의 “겸손으로 시작된 구원의 역사”는 이렇게 시작됩니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또는 본체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빌립보서 2:6~8
위의 말씀은 바울이 로마의 옥중에서 빌립보의 교인들에게 쓴 빌립보서의 말씀으로 예수를 닮아가겠다고 하는 우리가 예수님의 어떤 마음을 닮아가야 하는지를 분명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내용을 요약하여 자세에 대한 핵심 단어 하나로 표현한다면 아마도 “겸손”이 될 것입니다. 그것이 부르심에 응답하는 예수님의 자세에 대한 정의이며 모든 행동의 기초 틀이 되기 때문입니다.
물론 예수님의 사명은 인류역사상 단 한 분만이 감당할 수 있는 사명이었습니다. 하지만 주어진 사명이라는 관점에서 그 사명을 이루어가는 자세는 저를 비롯한 평신도들에게도 이해되어져야 하고 실천되어져야 하는 내용입니다. 겸손으로 시작되고 겸손으로 마무리되는 삶이야 말로 가장 위대한 결과를 만드는 삶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축복의 비결 또한 바로 그 겸손에서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주 앞에서 낮추라 그리하면 주께서 너희를 높이시리라”
야고보서 4:10
이성적이며 선택적인 겸손으로 시작된다.
새로운 사역은 겸손으로 시작됩니다. 고기의 뱃속에 던져진 요나의 사역은 하나님 앞에서 본인의 죄성과 약함의 모습을 발견하고 회개하며 도우시는 하나님에 대한 고백과 더불어 주님 앞에서 무릎을 꿇는 기도로 시작되었고 (요나서 2:1~10), 다윗왕의 하나님께 대한 자세는 어린 시절 다윗의 시를 (시편 23편) 통해 하나님께 온전히 의존하는 겸손의 자세였음을 볼 수 있습니다. 침례 요한도 그는 흥하여야 하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요한복음 3:30)며 자신을 내려 놓음으로 예비하러 온 자로서의 마무리와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이르되 너희는 주의 길을 준비하라 그가 오실 길을 곧게 하라 하였느니라” 마태복음3:3b) 예수님의 사역 출발을 이야기 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사역의 출발점에는 그렇게 늘 그렇게 부르심 받은 자의 “겸손”이 있었습니다.
인류 역사의 가장 큰 전환점인 구원의 역사는 바로 예수님의 탄생으로 시작되었습니다. 하나님과 같은 존재였던 예수님의 인간으로서의 삶이 말구유에서 시작됨으로 구원의 역사가 시작된 것입니다. 본문 말씀에서도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라고 이야기하며 사명을 이루는 목적을 위하여 자신의 모든 신성을 내려 놓으신 예수님의 모습을 설명합니다. 위 본분에서 “여기지 아니하시고” “자기를 비워” “가지사” “되셨고” 등의 단어들이 의도적/선택적 단어임을 볼 때 그러한 낮아지심은 강제가 아니라 예수님의 자유의지적 선택이었으며 언약의 성취를 위한 이성적 선택이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사역은 그렇게 스스로 낮아지심을 선택하는 “이성적 선택을 통한 낮아짐의 겸손”으로 시작된 것입니다.
예수님 사역의 출발점이 바로 자유의지적 선택을 통한 “낮아짐의 겸손”이었듯이 하나님의 부르심에 대해 크리스천 리더들의 보여야 하는 유일한 반응은 바로 그 “겸손으로 받음”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사명에 부합하는 모습을 취하는 겸손
목적 중심의 예수님이 그의 사명 성취를 위한 핵심 자세는 “그 사명에 부합하는 모습을 온전히 취하는 겸손”이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의 입장에서는 가지신 신성을 완벽히 내려놓는 온전한 “낮아짐의 겸손”이었습니다.
첫째로 내려 놓으신 것은 자신의 위치입니다. 말씀에서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라며 예수님께서는 먼저 자신의 위치를 내려 놓으셨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과 하나이시기에 하나님과 같은 동등함의 위치이지만 이제는 주어지는 사명을 위해 자신의 위치를 내려 놓고 사람의 모습을 취하신 것입니다. 즉 창조주가 피조물의 모습을 취한 것입니다. 그것은 보여주기나 흉내내기로는 불가능한 것이며 피조물로 창조되어지고 태어나야만 하는 존재의 원천적 변화이며 주님의 완벽한 “낮아짐”의 모습인 것입니다.
두번째로 취하신 겸손의 모습은 자신의 모든 권리를 내려 놓으신 것입니다.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라는 말씀에서 볼 수 있듯이 예수님은 창조주인 하나님의 자리에서 피조물인 인간의 자리로 내려오시며 절대자로서의 모든 권리를 내려놓으셨습니다. 주인의 자리에서 종의 자리로, 다스리는 존재가 다스림을 받아야 하는 존재로, 명령하는 자리에서 복종해야 하는 자리로 내려오신 것입니다. 주님은 그렇게 완벽한 비움을 통해 사명에 부합하는 인간의 모습을 취하신 것입니다.
모든 사명은 그것을 이루기 위해 부합되는 어떤 모습이 존재합니다. 사역자는 사역자로서의 모습, 아버지는 아버지로서의 모습, 선생은 선생으로서의 모습, 정치가는 정치하는 사람으로서의 모습이 필요합니다. 세상죄를 지고 가야하는 예수님은 세상죄를 다 지고 가기 위한 온전한 사람의 모습을 취하셨던 것처럼 말입니다. 하나님으로서의 위치와 권능, 모든 신성을 내려 놓으시고 사명에 부합하는 가장 적당한 모습을 취하셨다는 것을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또는 본체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라는 말씀을 통해 우리는 이해할 수 있습니다. 가지신 사명을 이루기 위해 그에 맞는 모습을 가지기 위한 위대한 “낮아짐의 겸손”의 모습입니다.
사실 우리 크리스천 리더들에게 참으로 어려운 것이 바로 “위치와 권리”를 내려놓는 것 같습니다. 특히 가르치는 위치에 있는 저는 경청하며 이해하려는 모습보다는 자꾸 가르치려고만 하는 모습을 발견하게 됨을 고백합니다. 섬김을 가르치면서도 섬김을 받고자 하는 경우도 분명 있습니다. 크리스천 기업가들 중 직원을 말만이 아닌 진정으로 섬기는 회장님 또는 사장님들이 얼마나 될까요? 카페를 운영하며 일하는 아르바이트 학생들을 섬기고 있을까요? 직장에서 부하 직원을 바라보며 부하라고만 생각하는 실수는 하고 있지 않을까요? 부르심과 주시는 사명에 응답하는 예수님의 모습, “위치와 권리”를 완벽히 내려 놓으신 예수님의 “낮아짐의 겸손”을 보며 과연 예수를 닮아가고자 하는 나의 모습은 어떤가? 라는 질문을 해보게 됩니다.
복종으로 마무리되는 겸손
“낮아짐의 겸손”으로 시작된 예수님의 겸손은 완벽한 복종으로 마무리 됩니다. 말씀에서는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라고 마무리 합니다. 여기에서 복종이라는 단어는 헬라어로는 (hypēkoos, 하이페코스) “경청하다” “권위에 대한 경외함과 경배함”등의 뜻이며 그것은 행동을 동반하는 경청을 의미합니다. 다시 말해 명확한 위계질서의 이해와 주인의 절대권을 인정하는 종의 모습입니다. 그러한 종이 주인의 말을 정말 집중해서 들음으로 주인의 뜻을 이해하고 그에 맞추어 행동하는 순종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복종은 하나님의 절대권을 인정하고 그의 뜻과 마음을 헤아리며 죽기까지 주어진 사명을 이루고자 하는 완벽한 겸손의 자세였으며 그것을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증명하신 것입니다. 그렇게 예언된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이사야 53:4~5) 예수님의 구원 역사는 이루어지게 된 것입니다.
정리합니다.
예수님의 구원 역사는 “낮아짐의 겸손”으로 시작되었고 그 겸손은 그저 자신의 것을 내려놓는 것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절대권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뜻과 마음을 살펴 주어진 사명을 죽음으로 마무리하는 복종으로 증명되는 완벽한 겸손이었습니다. 예수님이 보여주신 겸손은 그저 아름다운 말과 주일에만 보여지는 우리들의 Sunday Christian적 겸손과는 너무도 다른 모습의 겸손입니다. 예수님의 겸손은 가진 모든 것을 내려놓음에서 시작하여 사명에 필요한 옷을 완벽히 입고 죽기까지 충성하는 겸손이었습니다. 주인의 마음과 소원에 집중하며 온전한 충성으로 살아가는 종만이 보여줄 수 있는 그런 겸손으로 꽉 채워진 삶을 사신 것입니다. 즉 위대한 리더 예수님의 삶은 진정한 영적 예배로 드려진 삶이었다는 것입니다(“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로마서 12:1). 그러한 온전한 겸손으로 출발한 예수님의 역사는 그 목적을 이루며 높이 들림을 통해 하나님께는 영광이 된 것입니다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빌립보서2:9-11) 말씀은 그렇게 시작한 예수님의 마음 즉 “온전한 겸손”을 우리도 마음에 품어야 한다고 말씀 하고 계신 것입니다.
교만으로 시작된 죄의 역사는 그렇게 예수님의 겸손을 통해 구원의 역사로 연결되어 축복과 넘치는 은혜의 시대를 만들게 된 것입니다.
기도합니다.
“교만으로 시작된 죄의 역사는 그렇게 예수님의 겸손을 통해 구원의 역사가 시작됨을 봅니다. 그리고 주님을 보며 겸손이 사명 있는 크리스천 리더로서의 기본이 됨을 깨닫습니다. 진정한 겸손을 가지고 주신 사명을 대하게 하시고 그를 통해 주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을 보는 축복을 더하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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