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me 2. 빠른 길과 바른 길
이제 예수님께서 두번째 시험을 당하십니다.
“이에 마귀가 예수를 거룩한 성으로 데려다가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이르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뛰어내리라 기록되었으되 그가 너를 위하여 그의 사자들을 명하시리니 그들이 손으로 너를 받들어 발이 돌에 부딪치지 않게 하리로다 하였느니라”
마 4:5~6
마귀의 유혹은 한마디로 하나님의 아들인 것을 한번에 세상에 증명해 보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인 것을 굳이 3년이나 고생하고, 십자가의 고난도 겪어가며, 혹독한 죽음의 고통을 겪을 필요도 없이 한번에 만천하에 알리라는 것입니다. 3년이라는 고난의 시간과 십자가의 죽음의 시간을 굳이 통과하지 않아도 모든 것을 이룰 수 있다는 것입니다. 당장 모든 사람들이 볼 수 있는 성전의 꼭대기에 올라 세상을 내려다보며 뛰어내리고 시편 91편의 말씀데로 보호하심을 받음으로 세상을 향해 한번에 하나님의 아들인 것을 증명하고 목표를 이루라는 유혹인 것입니다. 쉽게 가자는 것이지요. 굳이 고생하지 말고 그렇게 쉽게 가자는 것입니다. 즉 그냥 눈 딱 감고 한번에 해결하자는 유혹인 것입니다. 즉 빠른 길을 보여주며 쉽게 가자고 하는 것입니다.
성전 꼭대기에 딱 서면 얼마나 과시하기 좋습니까? 자신을 세상에 한번에 보여줄 수 있는 기회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위를 우러러보며 펼쳐지는 기적을 체험한다면 또 얼마나 멋진 일입니까? 굳이 고생하지 않아도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인 것을 만 천하에 증명하며 찬양 받을 수 있는 최상의 기회 아닐까요? 가장 빠르고도 쉬운 멋진 기회에 대한 아이디어를 사탄이 제공하는 것입니다.
같은 유혹이 있다.
사실 크리스천 리더들에게도 같은 유혹은 늘 존재합니다. 좀 더 빠르고, 좀 더 쉽고, 박수 받으며 멋지게 내 모습을 세상에 보여줄 수 있는 기회가 늘 존재합니다. 그렇게 세상의 꼭대기에 서서 스스로를 드러내고, 인정받고, 박수 받고 싶어하는 마음을 우리는 가지고 있습니다. 쉽고 빠른 길이 있다며 그 길을 택하고 싶어하는 본성이 우리 인간에게는 있다는 것입니다.
때로는 그것이 주신 사역에도 도움될 것 같은 계산을 하게도 됩니다. (진리가 있고 없고는 중요한 것이 아니라) 뛰어난 웅변가가 되어 멋지게 설교를 한다면 교회도 빨리 성장할 수 있을 것입니다. 복음보다는 은사를 베풀며 박수를 받으며 교주와 같은 존재가 되면 교인의 수도 빨리 늘어나고 그렇게 되면 하나님의 나라도 빨리 확장 될 것같은 착각에 빠져 자신이 왕이 되어 사는 종교인도 있습니다. 자신에게 주어지는 그 칭송이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지도 모르고 신나게 사역을 한답시고 다니는 경우가 분명 있다는 것입니다. 굳이 진리를 공부하며 참 목자가 되는 것보다는 방법론과 조직이 우선되어 원하는 목표를 이루는 빠른 길을 선택하는 경우도 있을 것입니다.
기업을 하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십일조와 교회 출석, 교회내에서의 직분을 자랑하며 다른 종교인 기업가와의 관계를 만들어 나가기도 합니다. 제품과 가격의 경쟁력 보다는 종교적 연결고리가 우선되는 관계속에서 기업의 이익을 교묘히 취하는 경우도 있다는 것입니다. 어느 기업내 신우회의 회장이 자신과 장로인 기업주와의 관계를 이용하여 자신의 책임을 요리조리 회피하며 회사생활을 하는 경우도 보았습니다.
그렇게 좀 더 쉬운 방법을 찾아 빠른 길을 선택하며 자신의 목적을 이루고자 하는 마음은 누구에게나 있는 유혹일 것입니다.
바른 길을 선택하시는 예수님
“예수께서 이르시되 또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 하였느니라 (마 4:7)”
예수님은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시며 빠른 길보다는 바른 길을 선택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이용하여 자신을 시험함으로 하나님께서 진정으로 그 말씀을 지키시는지 시험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에게 중요한 것은 빠른 길이 아니라 바른 길, 즉 하나님께서 정하신 길을 가는 것이었습니다. 그 길은 3년이라는 세월의 머리 둘 곳도 없는 삶이었습니다 (마 8:19~20). 그 길은 창과 채찍, 그리고 십자가 위에서 죽음에 이르는 비참한 길이었습니다. 예수님에게는 그것이 자신이 가야 할 바른 길이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그 바른 길을 가셨기에 구원의 역사가 가능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때에 그에게 주어진 그 사역의 길을 당당하고 바르게 가셨던 것입니다. 와 보라! 나를 따르라! 내 안에 있으라! 라고 이야기 할 수 있었던 리더로서의 예수님의 당당함은 바로 그 바른 길을 선택하고 걸어가는 판단의 기준과 용기에서 나오는 것이었습니다.
아스팔트에서는 생명이 자라지 않는다.
인간이 좋아하는 빠르고 쉬운 길에서는 생명이 자라지 않습니다. 아스팔트 길이 좋아 보이고, 편해 보이고, 빠르고 쉬워 보이지만 그 길에서는 생명이 자랄 수 없습니다. 물론 가끔은 꾀를 부리게도 되고, 편법을 쓰고 싶은 유혹에 빠질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관습이라는 명분을 가질 때도 분명 있으며 합리적, 논리적, 현실적인 것으로 보일때도 있습니다. 남들 다 하는 건데 뭐!라는 생각이 들만큼 보편적일때도 분명 있습니다. 그렇게 빠른 길, 쉬운 길들이 눈앞에 열리는 경우가 분명 있습니다. 인문학적으로 “성공하는 것”과 “성공을 지키는 힘”의 차이라는 측면에서도 이야기할 수 있지만 크리스천 리더인 자에게 더욱 중요한 것은 그 길에서는 생명이 자랄 수 없다는 것입니다.
특히 크리스천 리더에게는 심기운 이유가 있습니다. 이루어야 할 사명이 있으며, 복음전파라는 명령이 있습니다. 그렇게 달라야 하는 크리스천 리더이기에 빠른 길, 쉬운 길이 아니라 생명이 자랄 수 있는 바른 길을 가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걸음은 등경위에 놓여 세상 사람들이 바라보아야 하는 빛이 되어야 하며 그로 인해 하나님께 영광이 되어야 하는 길 위에 있어야 하기 때문에 더욱 그렇습니다 (마 5:14~16).
정리합니다.
예수님의 공생애가 시작되기 전, 사역이 시작되기 전, 예수님께서 당하신 시험을 통해 성공의 비결을 봅니다. 예수님께서 받으신 세개의 시험 중 두번째는 바로 빠른 길과 바른 길에 대한 시험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빠르고 쉬운 길이 아니라 바른 길을 선택하시며 살아가야 하는 리더로서의 분별력과 용기를 보여주셨습니다. 그렇게 훌륭한 리더로서의 모범을 보이시고, 주어진 일에 성공할 수 있는 핵심적 가치 기준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이것은 크리스천 리더 뿐만이 아니라 세상의 모든 리더에게 요구되는 덕목 중 하나인 것은 그리 논쟁의 여지가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세상의 리더의 기준과는 다른 기준을 가져야 하는 크리스천 리더에게는 더욱 중요한 사항입니다. 이것은 단순한 바른 길의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의 정하신 길이 바른 길이라는 신앙이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에 살고 있기에 크리스천 리더들도 빠른 길, 쉬운 길에 대한 유혹이 많습니다. 갈래길에서의 우리의 선택의 기준은 빠르다! 쉽다! 남들도 다 한다! 관습이다! 등이 아니어야 합니다. 우리의 기준은 바른 길이냐?가 되어야 합니다. 그 길을 통해 우리는 빛으로서의 사명을 감당할 수 있으며, 그것을 감당할 때 주신 사명을 감당하고, 주시는 축복을 감당하며 하나님께 영광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기도합니다.
“빠른 길, 쉬운 길에 대한 유혹도 있지만, 그 길을 찾는 습성 또한 분명 내 안에 있음을 고백합니다.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겠습니다. 혼란스러운 세상을 살아가며 바른 길을 알아볼 수 있는 지혜를 허락하시고, 그 길을 선택하는 용기 또한 허락 하시옵소서. 그로 인해 보시기에 좋아더라고 칭찬받는 종의 삶이 되게 하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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