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리더십 1. 목적 중심의 리더십
Theme 1-4. 목적 중심의 크리스천 리더가 조심해야 할 것들!
예수님은 역사상 최상의 영향력을 끼친 리더이고 목적 중심의 리더십, 겸손, 카리스마적, 변화 주도적, 양육의 리더십, 섬기는 리더십 등의 여러 다양한 리더십 스타일을 보여준 리더입니다. 한마디로 모든 리더십 스타일을 보여주며 각 스타일의 완벽한 교본을 제시하여 보여준 리더인 것입니다.
저도 공부를 하면 할수록, 현장에서 자기계발과 리더십이라는 주제를 다루면 다룰수록 말씀속에서의 원리가 그 핵심에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고 던져지는 질문들에 대한 답 또한 그 안에서 찾게 되는 것입니다. 꼭 기독교적인 대화가 아니라 하더라도 셀프-리더십, 자기계발, 팔로우어십, 리더십을 이야기 하다 보면 결국에는 말씀속에서의 원리를 설명하고 있는 것을 발견하게도 됩니다. 그러한 시간과 경험이 쌓일수록 모든 질문의 답은 결국에는 말씀속에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고, 가장 효율적인 성공학 또한 말씀안에서 발견하게 되면서 말씀안에서 발견하는 셀프-리더십, 팔로우어십, 리더십이야 말로 가장 선명하고, 현실적인 것임을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조심해야 할 것…
예수님이 보여주신 여러 리더십 스타일을 공부하며 나누어 보는 첫 과정으로 목적 중심의 리더십에 관해 나누어 보고 있습니다. 하지만 엄연한 현실은 우리는 예수를 최선으로 닮아가고자 최선을 다하는 것이지 결국에는 예수 자체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목적 중심의 리더십을 보면서 예수가 아닌, 그러면서도 예수를 닮아가고 싶어하는 크리스천 리더로서의 우리는 분명 조심해야 할 것들이 있고 기억해야 할 것들이 있습니다. 마치 하나님은 분명 복의 근원이 되시는 하나님이시기에 “기복 신앙”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니지만 어떻게 “기복”하느냐는 좀더 공부가 필요하고 훈련이 필요한 조심스러운 영역에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하나님은 약속하신 것을 지키시는 언약의 하나님이기에 사랑하는 자녀에게 이러저러한 모습의 축복을 부어 주십니다. 특히 분명한 목적 중심의 크리스천 리더들에게는 그 사명을 다하게 하기 위해 부르심 받은 곳에서 최선의 결과를 만들 수 있도록 도우심의 은혜 또한 분명 있습니다. 기업가는 최고의 이윤을 남기며, 최고의 기업이 되어야 하고, 이런 사장님, 회장님이라면 나도 예수 믿고 싶다는 이야기가 나올 만큼의 기업문화를 만들어야 합니다. 직장인이라면 주어진 부서에서 성실하게 일하며 결과를 만들고 좋은 관계를 만들어 감으로 예수 믿는 사람으로서의 선한 모습을 보여주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는 빛으로서의 사명을 감당하고 있어야 합니다. 부부는 예수를 믿는 성숙한 어른의 모습으로 가정을 꾸리며 이웃과 자녀들에게 자신도 자신의 부모들처럼 예수 믿는 가정을 만들고 싶다는 마음을 들게 할 정도의 성공적인 가정을 만들어야 합니다.
이처럼 정하신 곳마다 주어진 목적이 있고 이루어야 하는 사명이 있으며 세상이 보기에도 성공적인 삶의 모습이 되어야 하기에 조심해야 하는 것들이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 조심은 단순한 인간적인 체면의 문제를 넘어 하나님께 영광이 되느냐 마느냐의 문제이기에 더욱 큰 무게감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교만
축복의 하나님을 이야기하며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성취 또는 성공”이라는 것을 가지게 되면 가장 조심해야 하는 것이 바로 교만일 것입니다. 물론 연약한 인간이기에 조심해야 할 것들이 이것저것 많겠지만 가장 흔하게 실수하고 쉽게 넘어지는 것이 바로 교만이기 때문입니다. 목표를 이루고 보니. 꿈을 이루고 보니, 가지고 싶던 것을 가지고 보니 모든 것이 다 자신의 능력 같고, 축복도 자신이 예배 잘 드리고, 기도 잘하고, 헌금 잘해서 이루어진 것처럼, 즉 축복 자체가 자신이 잘나고 잘해서 받은 것 같은 착각에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주시는 축복이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라 자신이 잘해서 하나님이 주었다며 자신이 축복받을 자격이 있었기 때문이었다는 착각인 것입니다. 바로 그것이 교만 (히브리어 “까아”, “가바흐”, “룸” 등이 번역된 말로 ‘우쭐대다’ ‘자기를 높이다’ 등의 뜻) 이라는 것입니다.
그 교만함이 생기게 되면 이제는 자신에게 주어진 리더로서의 책임이 “하나님의 다른 자녀들을 잘 보살피라는 것”임을 잊어버리고 갑질을 하는 경우도 생깁니다. 에스겔서 28장 5절이 말씀처럼 (네 큰 지혜와 장사함으로 재물을 더하고 그 재물로 인하여 네 마음이 교만하였도다) 주어진 축복을 제대로 다스리지 못하고 오히려 마음에 교만이 들어와 그의 삶 자체가 오히려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저주가 되어버리는 것입니다. 주시는 축복이 주어진 책임과 사명을 다하는 도구로 쓰이며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자랑이 되고 자신보다 못한 사람에게 함부로 대하는 태도로 발전하여 오히려 주님의 역사에 방해가 되어버리는 경우입니다. 만약 성취한 것들과 소유한 것들 때문에 그러한 사람이 되어 버린다면 그것은 받은 축복을 저주로 바꾸어 버리는 어리석음 인 것입니다.
그렇기에 크리스천 리더들은 멈춤의 시간을 가지고 자신을 말씀에 비추어 보며 자신이 혹시 교만한지 “교만 테스트”를 해보아야 합니다. 그것은 아주 단순합니다. 자기개발에서도 이야기하는 “변화와 성장” “훈련”등의 개념에서 반드시 언급되어져야 하는 “생각” “말” “행동”의 관점에서 보는 것입니다. 즉 내가 교만한지를 테스트 해 보려면 내가 “어떤 생각” “어떤 말” “어떤 행동”을 하고 있는지를 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얼마전 어느 기업의 신우회 모임에서 제가 한 질문입니다. “부하 직원을 부하 직원으로 보십니까? 아니면 하나님의 다른 자녀로 보십니까?”라는 질문이었습니다. 아마도 같은 지시를 하더라도 단순히 “부하 직원”으로 대할 때와 “하나님의 다른 자녀”로 대할 때의 자세와 억양은 다를 것입니다. 어느 기업의 사장님에게는 “운전 기사를 그냥 운전 기사로 보십니까? 아니면 하나님의 다른 자녀로 보십니까?”라는 질문을 했던 기억도 납니다. 부하 직원에게, 운전 기사에게, 고객에게, 동료에게, 배우자에게 어떤 말과 어떤 행동을 하고 있는지를 보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가 보이게 됩니다. 바로 그 생각에 의해 내가 교만한가 아닌가가 결정 나게 됩니다.
교만한 사람에게서 발견되는 특징들은 그 외에도 여러가지가 있습니다. 몇 가지를 정리하자면 아래와 같습니다.
- 하나님을 잊어버립니다. – “두렵건대 네 마음이 교만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릴까 하노라” (신명기 8:14)
- 주변에는 다툼이 늘어납니다. – “교만에서는 다툼만 일어날 뿐이라” (잠언 13:10)
- 변론과 언쟁의 언어가 늘어납니다. – “그는 교만하여 아무 것도 알지 못하고 변론과 언쟁을 좋아하는 자니 이로써 투기와 분쟁과 비방과 악한 생각이 나며” (디모데전서 6:4)
- 자신의 본질적 위치를 망각합니다. – “그가 강성하여지매 그의 마음이 교만하여 악을 행하여 그의 하나님 여호와께 범죄하되 곧 여호와의 성전에 들어가서 향단에 분향하려 한지라” (역대하 26:16)
- 죄에 둔해 집니다. – “그리하고도 너희가 오히려 교만하여져서 어찌하여 통한히 여기지 아니하고 그 일 행한 자를 너희 중에서 쫓아내지 아니하였느냐” (고린도전서 5:2)
- 어떻게 보여질까에 우선순위가 있다. – “사울이 이르되 내가 범죄하였을지라도 이제 청하옵나니 내 백성의 장로들 앞과 이스라엘 앞에서 나를 높이사 나와 함께 돌아가서 내가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 경배하게 하소서 하더라” (사무엘상 15:30)
교만한 자에게서 보여지는 이러한 현상들을 거울로 삼아 스스로의 “교만 테스트”를 해보는 시간을 가져 본다면 분명 도움이 될 것입니다. 교만함이 보일 때마다 마태복음 8장 17~18절(이는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하신 말씀에 우리의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셨도다 함을 이루려 하심이더라 예수께서 무리가 자기를 에워싸는 것을 보시고 건너편으로 가기를 명하시니라. )에서 보여주신 예수님의 모습, 자신에게 모이는 무리를 떠나시는 “WHY”에 집중하는 예수님을 생각하며 그 모습을 닮아가는 우리가 되었으면 합니다.
바쁨
두번째로 경계하고 조심해야 하는 것은 “바쁨” 입니다. 일이 되어져 가고, 이루어져 가다가 보면 점점 더 바빠집니다. 그러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발생하는 현상이 있기 때문입니다. 첫째는 계획속에서 사는 삶이 아니라 즉흥적인 삶으로 변질하게 된다는 것이고 둘째는 주님과 자신이 자신의 삶을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일과 다른 사람들이 자신의 삶을 지배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 “바쁨” 때문에 때로는 중요한 것을 놓치기도 하고, 예민해져서 신경질적인 사람이 되기도 합니다. 때로는 그 “바쁨”이 가족이나 동료들과의 관계에 치명적인 상처를 남기기도 합니다. “바쁨”은 분명 관리되어져야 하는 성장통의 하나인 것입니다.
특히 인터넷과 스마트 기기의 발전으로 하루 몇 분도 차분한 쉼의 시간을 갖기 힘든 삶을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화장실을 가서도 검색을 하고 메세지를 주고 받습니다. 식사를 하거나 대화를 하면서도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며 그리 급하지 않은 메세지에도 바로 대답을 해주어야 할 것만 같은 강박증에 시달리기도 합니다.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식사조차 편하게 할 수 없었던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사람들과 잠시 거리를 두고 쉼의 시간을 가지고 식사의 시간을 가지도록 하라고 하셨습니다. (이르시되 너희는 따로 한적한 곳에 가서 잠깐 쉬어라 하시니 이는 오고 가는 사람이 많아 음식 먹을 겨를도 없음이라. 마가복음 6:31) 말씀에서도 쉼과 평화로운 시간속에 음식을 나누는 시간의 필요성을 보여줍니다
누가복음 10장 39~42의 말씀은 (그에게 마리아라 하는 동생이 있어 주의 발치에 앉아 그의 말씀을 듣더니 마르다는 준비하는 일이 많아 마음이 분주한지라 예수께 나아가 이르되 주여 내 동생이 나 혼자 일하게 두는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시나이까 그를 명하사 나를 도와 주라 하소서 주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마르다야 마르다야 네가 많은 일로 염려하고 근심하나 몇 가지만 하든지 혹은 한 가지만이라도 족하니라 마리아는 이 좋은 편을 택하였으니 빼앗기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일에 집중하는 마르다와 예수님의 말씀에 집중하는 마리아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사회적 분위기와 일과 결과 중심적인 문화가 점점 우리를 바쁘게 하고 일에 집중하게 하여 묵상과는 거리가 점점 멀어져 가는 우리의 모습에 대한 경고이기도 할 것입니다. 세상속에서 “To Do”에 빠져 있는 마르다처럼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과 주의 말씀을 듣고자 하는 마리아의 모습에서 우리는 분명 깨닫는 바가 있어야 할 것입니다.
특히 그리스도인의 바쁨은 교만과 직결되는 위험성도 가지고 있습니다. 내가 열심히 해서 이루었다는 교만으로 발전하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더욱 마르다의 모습이 아니라 마리아의 모습이 필요합니다. 빌립보서 4장 6~7절 말씀에서는 의도적으로 주안에서 쉬며 기도하고 간구하고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는 시간을 가지라 말합니다.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일도 잠시 뒤로 미룰 수 있고, 스마트폰도 잠시 치워 놓을 수 있어야 합니다.
크리스천 리더들은 결국에는 하나님이 하셔야 한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바쁨”이라는 것이 사역의 잘 되어져 가고 있다는 증거가 아니라 오히려 위험한 사탄의 시험일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자신의 명성이나 성공이 목적이 아니라 하나님이 부르신 바 이루고자 하시는 목적에 대한 분명함이 있다면 바쁠수록, 잘 되는 것 같을 수록 조심 또 조심하며 주님께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마르다의 모습이 아니라 마리아의 모습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신앙 생활이 아닌 종교 생활
목적 중심의 크리스천 리더가 조심해야 하는 세번째는 신앙생활이 종교생활로 변질되는 것입니다. 위에서 이야기한 “교만”과 “바쁨”은 이제 주님과의 관계에 영향을 끼치게 되고, 예배와 헌금, 봉사와 섬김이 이제는 감사와 찬양에서 나오는 신앙생활이 아니라 그저 생활의 습관이 되어지고, 자신을 합리화 하거나 포장하는 도구가 되고, 자기 만족을 위한 종교 생활이 되어져 버리는 것입니다.
이렇게 신앙 생활이 그저 습관적인 종교 생활로 바뀌는 것에 대해 요한계시록 3장 15~16절에서는 차지도 않고 뜨겁지도 않음으로 비유하며 분명한 경고를 하셨습니다.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뜨겁지도 아니하도다 네가 차든지 뜨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뜨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버리리라.”
누가복음 18장 10~14절에서는 바리새인의 기도를 통해 신앙 생활과 종교 생활의 차이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두 사람이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가니 하나는 바리새인이요 하나는 세리라 바리새인은 서서 따로 기도하여 이르되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나는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 하고 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이르되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였느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에 저 바리새인이 아니고 이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고 그의 집으로 내려갔느니라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하시니라.”
고린도전서 10장 12절에서는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 라는 말씀을 통해 제대로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는 착각을 하고 있는 자들에게 넘어질까 조심하라며 경고의 말씀을 하고 계십니다.
이처럼 말씀을 통해서도 자녀된 자들에게 교만과 바쁨, 그리고 그저 습관적인 종교 생활에 대한 경고의 말씀을 주고 계십니다. 이것은 부르심과 허락하심을 통해 주어진 위치에서 주어진 사명을 감당해야 하는 사역자로서의 리더, 평신도로서의 리더 모두에게 해당되는 경공의 말씀인 것입니다. 목적 중심의 크리스천 리더라면 특히나 더욱 경계하고 경계해야 하는 자신의 모습일 것입니다.
정리합니다.
목적 중심의 리더들은 그 분명하고 흔들리지 않은 “WHY”를 중심으로 분명한 목적이 정해지고 이를 통해 과정 또한 선명해 집니다. 그것은 성취의 가능성을 높이게 되는 가장 근본적인 힘을 제공하게 될 것입니다. 특히 크리스천 리더들에게는 부르심이라는 분명한 목적 “WHY”가 존재합니다. 그리고 그것의 성취는 한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의 사역이라는 큰 그림안에 있는 것이기에 더욱 최선으로 결과를 만들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이기에 하나님의 도우심도 분명 있을 것입니다. 상상도 못할 축복을 누릴 수도 있습니다.
목적 중심의 리더, 결과에 대한 명확한 그림을 그리며 그 주어진 사명의 성취를 위한 축복을 체험하고 누리게 되는 크리스천 리더가 더욱 조심해야 하는 것은 바로 자신의 마음과 생활이 교만, 바쁨, 종교생활로 변질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세상의 리더들도 조심해야 하는 리더의 소양이기도 하겠지만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고 부르심에 목적에 맞는 종, 착하고 충성된 종의 모습으로 살아야 하는 크리스천 리더에게는 단순한 자신의 사역의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기도 하고 다른 이의 사역에 악영향을 끼칠 수도 있기에 더욱 조심하고 경계해야 할 것입니다.
기도합니다.
“축복이 더 할수록 더욱 그 축복의 근원이 하나님이신 것과 축복의 이유가 사명을 위함임을 기억하게 하시어 교만에서 멀어지고, 바쁨에 중독되지 아니하며, 주를 기억하는 올바른 신앙인의 삶을 살아가게 하시옵소서. 그리하여 더욱 더 큰 일을 맡아도 될 만한 착하고 충성된 목적이 분명한 주의 종이 되게 하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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