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라는 것 자체가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이 있습니다. 특히 성공을 향해 달려가다 보면 어려울 때도 있을 것이고 좌절, 실수, 실패와 같은 어려운 상황들도 당연히 겪게 마련입니다. 물론 그러한 어려움의 과정은 누구에게나 있는 삶의 과정이고 성장과 성공의 여정을 가다 보면 당연히 겪어야 하는 과정이라는 것을 이성적으로는 이미 알고 있다 하더라도 당하는 사람에게는 감정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정말로 힘든 과정이 될 것입니다. 때로는 그 정도가 한계점을 넘어 당하는 사람의 인생 전체를 뿌리 채 흔들고 견딜 수 없는 엄청난 무게감으로 짓누르는 것과 같은 고통의 시간이 될 수도 있습니다. 인간이라면 누구든 이러한 순간에는 위로를 필요로 합니다.
위로도 성공에 필요한 것은 사실이다.
이처럼 삶속에서 주어지는 어려움과 좌절의 순간에 인간은 가족과 동료로부터 관심과 위로를 필요로 합니다. 그리고 그들이 제공하는 위로를 통해 힘과 용기를 다시 얻게 됩니다. 친구나 동료 중 그나마 좀 가까운 사람들에게 마음에 있는 이러저러한 이야기를 다 쏟아내고 나면 속이 좀 시원해지기도 하고 위로가 되어 감정적 편안함을 느끼기도 합니다. 감정을 가진 인간이기에 그러한 힐링의 시간들이 필요한 것입니다. 인간에게 그러한 위로가 주는 치유의 시간은 필요한 것이고, 그것을 적절히 찾아 누리는 것 또한 성공하는 사람들이 가진 여러 특성 중 하나인 것임도 분명합니다.
문제는 위로에 중독되는 것이다.
하지만 상담을 하다 보면 가끔 위로에 중독된 분들을 접하게 됩니다. 어느 것이나 그렇듯 위로도 도가 지나쳐 중독이 되면 심각한 문제가 됩니다. 마약에 중독된 사람이 끈임없이 마약을 찻듯 위로에 중독되어 반복되는 감정의 파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지속적으로 위로만을 찾게 되는 위험에 노출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위로는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가족이나 동료들에게 이야기를 쏟아 냄으로 시작됩니다. 그들은 이야기를 들어주거나 대화를 통해 심리적 안정을 찾도록 돕기도 하고, 새로운 용기를 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문제의 근본적 해결이나 개선이 가능한 방안을 제시할 만한 전문성이 결여되어 그저 감정의 배설을 통한 위로에서 끝이 날 뿐 현실적인 도움이 되는 조언을 하기는 힘든 경우가 많습니다. 때로는 상대적 만족감이나 우월감, 성취감 등을 느끼며 자기 위안의 시간이 되기 때문에 내 이야기를 들어주는 경우도 있을 것입니다.
물론 감정의 배설, 감정을 쏟아내는 것 차체가 치유의 한 과정이며 스스로가 새로운 방향성과 개선의 방법을 찾아가도록 돕는 기능으로 작용할 수도 있습니다. 위로는 분명 좋은 것이지만 위로에 중독되면 시간이라는 가장 중요한 자산이 낭비되고 위로라는 허울 좋은 명분속에 자신도 모르게 쳇바퀴 같은 삶에 빠져 들 수 있습니다. 그 수렁안에서는 원하는 미래가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그렇게 위로 받은 감정은 또다시 그 위로를 찾게 합니다. 마약에 중독된 사람처럼 그러한 “위로 중독”에 빠져 미래를 위한 시간이 아니라 현재의 감정처리에만 매달려 발전 없는 시간의 반복이 되는 것입니다. 특히 성장과 성공을 생각한다면 이러한 “위로 중독”은 분명히 경계해야 하는 것 중 하나일 것입니다.
위로를 통해 만들어지는 끼리끼리 문화를 경계해라.
위로 중독이 주는 또 다른 문제점은 그렇게 쏟아내는 감정의 배설이 주는 시원함과 그 말을 들어주고 동의해 주는 상대가 주는 동질감이나 동료의식에서 얻는 안정감에 빠져 그들과의 관계만이 자신에게 긍정적인 관계인양 여기게 되는 “관계의 편향성”에 빠지는 것입니다.
“위로 중독”에 빠지게 되면 옳은 말보다는 듣고 싶은 위로의 말을 듣고 싶어하고, 변화보다는 현실안주를 합리화 시키는 명분을 찾게도 되고, 자신과 다르면 적으로 돌려 미움과 증오의 눈으로 바라보게 되어 오히려 위로 이후가 더욱 나빠지는 경우도 발생하게 됩니다. 그러다 보니 자신의 이야기 들어주고 위로해 주면 좋은 사람이고 그것이 아니면 나쁜 사람으로 여겨지게 되어 자신만의 리그를 만들어 버리는 것입니다.
그러한 관계의 편향적 현상은 끼리끼리의 문화를 만들어 자신을 비롯하여 조직 전체에 부정적인 요소로 작용하게 됩니다. 어떤 조직이던 불만족한 사람들은 존재합니다. 그리고 이상하리만큼 그들끼리만의 화합은 정말 잘 이뤄집니다. 어려운 일, 기분 나쁜 일, 불공평하다고 느꼈던 일 등에 관해 서로 이야기하며 서로에게서 동질감도 느끼며 위로를 받기도 합니다. 상사로부터 질타를 당한 사람은 같은 경우를 당한 동료와 술잔을 기울이며 상사를 욕하면서 서로에게 위로를 받기도 하고, 새로운 전산 시스템에 적응하지 못하고 있는 사람은 비슷한 사람과 차를 마시며 새로운 전산 시스템은 불필요한 것이라며 동질감을 나누게 되고 자신의 부적응을 합리화하는 과정속에서 서로를 위로하기도 합니다. 이상하게도 안 되는 사람은 다른 안되는 사람과 만나 환경을 탓하고 시스템을 탓하고 상사와 동료를 탓하며 이런저런 안되는 요소들에 관해 대화를 나누고 서로에게 위로는 받는 것입니다.
이렇게 만들어지는 끼리끼리 문화는 긍정적인 요소 보다는 부정적인 요소가 많기에 경계해야 합니다. 그러한 문화속에서는 해결책도 없고 새로운 변화도 있을 수 없으며 어떠한 긍정적 변화를 만들어내는 솔루션 또한 찾을 수 없습니다. 그저 감정의 배설을 통해 느끼는 시원함이 제공하는 공허한 위로만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어린 시절 나보다 나은 친구와 사귀라는 어머님의 말씀이 기억이 납니다. 이처럼 성공을 하려면 나보다 나은 사람과 시간을 보내야 합니다. 원하는 것이 있으며 그 원하는 것을 가진 사람을 통해 배울 것이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부자가 되려면 부자 옆에 가라고 합니다. 성공을 하려면 성공한 사람 옆으로 가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점에서 위로 받기위한 만남과 그를 통해 접하게 되는 끼리끼리 문화속에서 같거나 비슷한 입장의 사람들과 보내는 시간의 효용가치는 다시한번 점검해 보아야 하고 측정해 보아야 합니다.
자신의 변화와 성장, 그리고 성공을 생각한다면 위로 중독에 빠진 사람들에게서 가장 흔히 보이는 “끼리끼리 문화”는 경계해야 합니다. 그리고 변화와 성장이 필요하고 도움이 되는 모임의 구성원이 되고자 하는 의도적 선택과 행동이 필요합니다.
위로 자체가 미래를 만들지는 못한다.
위에서도 이야기했지만 위로는 인간의 삶속에서 꼭 필요한 치유의 한 부분이고, 감정의 배설 또한 정신건강에 중요한 긍정적 기능을 제공하는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기억해야 하는 것은 위로 자체가 새로운 방향성을 제시하거나 새로운 방법을 가르쳐 주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위로로만 끝나는 대화는 성공을 위해 정말로 필요한 지식이 무엇이며 어떤 기술이 더 필요하고 어떤 가치관의 변화와 생각의 전환이 필요한지 가르쳐 주지도 않습니다.
성공자들에게 위로는 그저 지나가는 과정입니다. 그들은 위로보다는 솔루션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던 사람들입니다. 위로가 지난 과거의 힐링에 중점을 두고 있다면 솔루션은 미래를 만들어가는 방법론이기 때문입니다. 위로에 중독되어져 있다면 원하는 미래는 결코 만들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정리합니다.
기억하십시오. 위로는 분명 필요합니다. 하지만 위로는 위로일 뿐 (1)위로 자체가 원하는 미래를 만들지는 못하며, 만약 위로에 중독이 되어 버리기라도 한다면 그것은 오히려 (2)자신의 삶을 무기력하게 만들고, (3)위로에 중독된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끼리끼리 문화는 조직을 병들게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위로 중독”은 경계해야 하는 것이 맞습니다. 위로의 필요와 충족도 긍정적인 방향성이 있는 감정 활동이 되도록 조절하는 “자기 통제”의 힘을 키우며 성숙해 가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위로의 대화를 통한 힐링이 아니라 솔루션에 관한 대화를 통한 힐링을 추구해야 합니다. 때로는 자존심이 상할 수도, 전혀 위로가 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좀 냉정하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꿈을 가진 자들이 자신에게 던져지는 어려움과 좌절에 대한 선택적 반응일 것입니다.

꿈이 있고, 원하는 미래가 있고, 이루어야 할 인생 사명이 있는 당신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위로가 아니라 솔루션입니다. 그러니 위로 받기에 중독되지 마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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