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수준”이 아니라 “삶의 질”에 의해 결정된다. (진정한 성공 3)

앞의 두개의 글, 진정한 성공 1과 2를 통하여 성취와 성공이 다름을 나누었고, 소유가 아니라 마음의 평화가 성공의 기준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나눔으로 성공에 대한 기본적인 틀을 정립해 보려 하였습니다. 이제는 성공이라는 틀 안에 무엇을 담아야 하는가? 라는 질문을 하며 성공의 컨텐츠에 관한 내용을 나누어 보고자 합니다.

성공의 내용, 성공의 질에 관해 나누고자 한다면 아마 제일 먼저 정리해야 하는 것은 아마도 “생활 수준(standard of living)”과 “삶의 질(quality of living)”에 대한 정리일 것입니다.

생활수준 (Standard of Living)

성공을 꿈꾸는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성공에 대한 개념을 들어보면 대부분이 높은 직책과 그것을 통해 가능해지는 높은 수입, 좋고 큰 집과 그 안을 채울 좋은 가구와 가전제품들, 럭셔리 한 외제 차와 해마다 하는 해외 여행, 골프와 요트 같은 취미 생활, 명품 옷과 가방, 엑세서리들 등과 같은 것들입니다.

과연 그것들이 성공의 지표가 될 수 있을까? 라는 질문을 던져보게 됩니다.  하지만 그렇게 성공을 이야기하며 열거하는 그것들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그것들은 성취의 지표들이지 성공의 지표는 아님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그러한 성취의 지표가 되는 것들은 분명 삶을 윤택하게 하여 생활수준을 높이는 중요한 요소들임에는 분명합니다.  즉 생활수준의 높고 낮음에 영향을 끼치는 것들은 성취의 영역에 있는 것들로써 소유와 직결되는 것들임을 우리는 쉽게 알 수 있습니다.

당연히 생활수준은 높을수록 좋을 것이고 소유도 많을수록 좋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러한 모든 성취의 영역에서 만들어지는 생활수준의 높음 가지고는 행복할 수 없다는 것 또한 우리가 아닌 진실의 영역안에 있다는 것입니다.

이룸과 채움

많은 것을 이룰 수 있고 성취할 수 있습니다.  더 좋은 것을 소유하게 됨으로 생활수준 또한 모두가 부러워할 만큼 높아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이룸”만 가지고 인간의 영혼과 가슴을 채울 수는 없습니다.   소유가 외로움을 채울 수 없고, 부러움을 살지는 모르지만 진정한 우정은 또 다른 차원의 것입니다.  성취한 것들로 인해 인정을 받을 수 있을지 모르지만 사랑을 동반한 인정은 또 다른 이야기입니다.  이처럼 원하는 것을 다 이루는 “이룸”만 가지고도 채워지지 않는 영혼과 가슴의 허함과 외로움을 느낄 수 있습니다.

바로 그것이 “이룸”과 “채움”의 간극에서 인간이 느끼는 공허함이라는 것입니다.  그 간극을 채우지 못해 최고의 자리에서 외롭게 사는 사람, 다 이루고도 존재의 가치를 느끼지 못하는 사람, 부러움을 살지는 모르지만 사랑에 목마른 사람, 그러한 사람들처럼 많은 성취를 하고 생활수준도 높아졌는지 모르지만 인생 자체는 성공하지 못하고 실패하는 사람들이 분명 있습니다.

물론 생활수준은 중요합니다.  최소한 의식주에 관한 걱정은 없어야 할 것이고, 한 인간이 태어나 누려야 할 것들을 누리며 사는 (큰 부자는 아니라고 하더라도) 합리적인 수준의 생활수준은 누리고 있어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성취를 통한 “생활수준”의 향상은 “삶의 질”에 필요한 필요조건 중 하나이고 일부분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삶의 질 (Quality of Living)

인간의 행복은 “삶의 질”에 의해 결정되게 됩니다.  “삶의 질”은 인생 자체에 대한 만족감을 이야기하는 것이고 그것은 단순한 성취나 소유에 의해 만들어지는 “생활수준”과 같은 외면적인 것이 아니라 좀 더 내면적인 부분이 강합니다. 

이것의 이해는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이라는 서적으로 우리에게 너무도 잘 알려진 스티븐 코비의 “소중한 것을 먼저 하라”라는 책속에서 인간의 근본적인 욕구 – 살며, 사랑하며, 배우며, 유산을 남긴다 – 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 네가지 욕구는 인간의 근본적인 욕구이기도 하지만 그것의 충족은 행복을 가능하게 하는 “삶의 질”과도 욕구 충족의 4분면을 설명하였습니다.

간단히 설명하자면 인간에게는 건강하게 살고 싶은 욕망(PQ-신체지수), 사랑을 주고 받음으로 안정되는 감성에 대한 욕망(EQ-감성지수), 그리고 궁금한 것을 해결하고 배우고 싶어하는 욕망(IQ-지능지수)이 존재함과 동시에 자신이 후세에 무엇인가를 남기고 어떻게 기억되고 싶다는 영혼의 욕망(SQ-영성 지수)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 네 가지의 욕망이 균형 잡힌 성장을 통해 채워지기 시작한다면 인간은 원하는 행복에 가까워질 수 있다는 논리인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떠세요?  건강하고, 사랑하는 사람들과 사랑도 충분히 주고 받으며, 배우고 싶은 것들을 배우면서 하고싶은 일을 하는 과정속에서 무엇인가를 세상에 남기고 갈 수 있다면 충분히 잘 살았다, 가치 있는 삶을 살았다, 성공한 삶을 살았다고 이야기할 수 있지 않을까요?  그러한 관점에서 그의 인간의 욕망 4분면은 타당한 의미가 있으며 우리 스스로의 성공에 대한 개념과 내면적 욕구를 좀 더 깊고 솔직하게 들여다볼 수 있게 하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음도 분명합니다.

바로 그것이 “인생의 꽉 찬 느낌”을 제공하는 “삶의 질”과 연결된 것들이라는 것입니다.  내면적 충족을 채워주는 것들이기에 그렇고, 존재감과 인생의 충족감을 제공할 수 있는 것들이기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성공은 “생활수준”이 아니라 “삶의 질”에서 결정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생활수준”을 무시하자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마더 테레사, 간디, 아니면 독립투사와 같은 가치와 사명을 가진 성공의 삶을 추구하는 사람이 아닌 평범한 사람이라면 생활수준도 너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특히 가정을 꾸리고 자녀를 키우며 사회 생활을 하면서 돈을 벌고 세금을 내는 평범하지만 그렇게 좋은 국민들도 분명 국가와 사회에 정말 필요한 사람들이고 그들이 제공하는 사회적 가치 또한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생활수준”은 그들의 “삶의 질”에 분명 큰 영향력을 가지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스티븐 코비가 이야기하는 4분면에 속한 것들이 현실속에서 재정적으로 가능하도록 돕는 재정지수(FQ- Financial Quotient)이 더해져야 할 것입니다.  살며, 사랑하며, 배우고, 유산을 남기려면 돈이 있어야 기회가 있습니다.  돈이 전부는 아니지만 많은 것을 가능하게 하고 기회를 제공합니다.  의식주도 해결되지 않는 사람이 건강하고, 사랑하고, 배우고, 유산을 남긴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행복 하십시오.

위의 도표를 참조하십시오.  행복하기 위한 기초 5대 조건들입니다.  엄청나게 충분하지는 않다고 하더라도 건강, 지성, 감성, 그리고 재정에 (합리적 수준에서라도) 부족함이 없고 유산으로 남길만한 정신적, 재정적 무엇인가라도 있으면 인간을 행복할 수 있습니다.

행복 하십시오.  “행복추구권”은 인간의 기본권입니다. 

기억하십시오. “생활수준”이 행복에 도움은 될 수 있지만 행복을 보장할 수는 없습니다.  “생활수준”은 그저 “삶의 질”을 받쳐주는 5개의 기중 중 하나일 뿐입니다.  그렇기에 성공을 결정하는 것은 “생활수준”이 아니라 “삶의 질”이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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