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얼마 전 출장 중에 어느 집사님과 차 한잔을 나누는 기회가 있었습니다. 아무래도 그 분이 신앙인이시고 집사님이시다 보니 많은 이야기가 신앙생활에 관한 이야기였고, 이런저런 대화 중에 주일 예배가 은혜가 되지 않는다며 교회를 옮겨야 하는가에 고민을 나누게 되었습니다. 아무래도 생활속에서의 이런저런 힘든 환경 속에서 은혜를 받고 위로도 받고 싶은 마음이 있을 수 있기에 그분의 고민은 이해도 되고, 합리적이기도 하고, 또한 절실함이 베어 있는 고민이었습니다.
저는 그 분과의 대화 속에서 예배, 특히 주일 예배 참석에 관한 “WHY”의 이해부족을 보게 되었습니다. 저도 그랬듯이 주일 예배에 참석하는 이유(“Why”)에 대한 이해가 없으니 주일 예배는 내가 은혜 받으러 가는 것이라는 자기 중심적 이기주의(?)에 빠지는 실수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WHY”를 놓치면 그런 결과가 나온다.
세상의 어떤 모임, 행사, 일 등의 모든 것에는 각각의 분명한 “WHY”가 존재합니다. 그리고 그 “WHY”에 관한 명확한 이해가 없으면 우리는 혼란에 빠지게 되고, “WHY”의 혼란은 잘못된 판단과 행동, 삐뚤어진 기대 가치와 결과를 만들어 낼 수 있기에 조심해야 하는 것입니다.
예배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저는 위의 말씀을 나누며 주일 예배에 관한 개념을 다시 생각해 보고 주일 예배의 “WHY”는 내가 은혜 받는 것이 목표가 아니라 하나님께 예배하는 것이라는 것을 나눌 수 있었습니다. 고민의 중심이 주일예배와 관련된 것이었기에 주일 예배의 “WHY”에 관한 내용이 나눔의 주된 내용이었고 그것은 주일 예배는 하나님을 위한 것이지 나를 위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었습니다. 즉 예배는, 특히 주일 예배는 부흥회와는 다르게, 내가 은혜 받아야 하는 시간이 아니라 하나님께 온전한 예배를 드려야 하는 시간인 것입니다. 물론 주일 예배를 통해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은혜를 받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주된 “Why”, 주일 예배의 주된 목적은 내가 주님께 예배를 드리는 것이지 내가 은혜 받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어찌 보면 주일 예배에 대한 이러저러한 평가자체가 내 중심적인 이기주의가 될 수 있다는 생각도 듭니다. 그러한 자기 중심적 생각으로 인해 진정한 예배가 아니라 주일 설교가 이랬느니 저랬느니, 은혜가 됐느니 말았느니 등의 비판과 불평 불만으로 채워진 시간이 될 수도 있겠다는 두려움이 드는 것입니다.
세상 모든 것이 마찬가지다.
세상의 모든 존재하는 것들은 각각의 분명한 “WHY”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단지 어떤 모임, 행사, 일과 같은 것들 뿐만이 아니라 인간 자체의 존재성에도 각자의 “WHY”는 존재합니다.
리더라는 입장에서도 마찬가지 입니다. 기업인이 기업의 존재이유(“WHY”)를 망각한다면 노동 착취를 하게 될 것이고, 정치인이 정치인으로서의 존재이유(“WHY”)를 망각하면 국민들은 불행하게 됩니다. 직장인이 직장에서 최선을 다 해야 하는 이유(“WHY”)가 자신의 역량을 제공함으로 가능하게 되는 기업의 가치 상승이 아니라 그저 월급이라는 돈이라면 그 직장인 본인은 물론이요 그런 직원을 가진 기업의 미래는 불투명할 것입니다. 기업 또한 운영의 묘미를 통해 속한 직원과 고객에게 걸맞은 충분한 가치를 제공함으로 사회에 기여하는 기업 존재의 “WHY”를 충족시키지 못한다면 기업으로서의 존재 가치를 인정받으며 발전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부모가 부모로서의 “WHY”를 정확히 이해 한다면 권위의 사용을 남용하지 않고 가족의 행복과 미래를 위해서만 사용하는 것으로 스스로의 권위를 통제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렇듯 정치인, 기업인, 종교인, 가족 구성원, 사회의 구성원 등으로서의 우리 모두는 각자의 타이틀에 맞는 “WHY”가 존재합니다.
“WHY”는 “WHAT”과 “HOW”를 결정한다.
주일 예배의 “WHY”와 부흥회의 “WHY”가 다름을 정확히 안다면 각 예배에 참석하는 우리의 “WHAT”과 “HOW” 또한 좀 더 명확히 구분되고 참석하는 자세도 다를 것이며 그에 따른 결과 또한 다를 것입니다. 즉, 예배, 부흥회, 구역모임, 성경공부, 교제 등의 명확한 “WHY”의 이해는 그것에 임하는 기대가치와 자세에 영향력을 끼치게 될 것이고 그것은 각 시간을 통해 이루어야 할 목표 성취에도 영향을 끼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일터에서도 마찬 가지입니다. 몇 달 전 제조업을 하시는 한 분을 만나 기업 컨설팅을 했던 기억이 납니다. 사업은 비교적 안정되고 이윤도 좋았으나 직원들의 이직률이 높은 상태였고 그러다 보니 지속적인 새로운 직원 채용과 교육을 위한 비용 지출이 높은 상태였습니다. 이러저러한 진단 과정을 통해 유추된 몇 개의 방법론에 관한 대화도 나누었지만 가장 핵심적인 문제는 그 기업의 사장님에게 있었습니다. 그 분에게는 크리스천 리더로서 넘치는 감사는 있었지만 분명한 “WHY”가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사업체를 맡기신 “WHY”의 이해도가 부족하다 보니 직원들을 대함에 있어서도 일반 회사와 다를 것이 없었습니다. 입에서 나오는 찬송과 직원을 대하는 태도와 방법에서 오는 이질감이 오히려 더 큰 부작용이 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던 것입니다. 다행히도 감사할 것은 그 분의 신앙이 올바른 곳에 있었기에 대화를 통해 청지기로서의 실천적 개념 정리와 더불어 맡기신 “WHY”를 이해하고 그 이해도를 바탕으로 직원들과의 관계 형성과 복지에 관한 새로운 시스템의 필요성을 인지하고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처럼 “WHY”의 정확한 이해는 ”WHAT”과 “HOW”의 올바른 정립과 더불어 방향 설정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게 됩니다. 특히 그리스도인 리더로서 “WHY”의 이해는 단순한 한 개인의 성공과 실패를 뛰어넘어 주님이 맡기신 사명의 완성도와도 직결되는 것이기에 더욱 중요할 것입니다.
기도합니다.
“’WHY’를 정확히 이해함으로 ‘WHAT’과 ‘HOW’의 효율성을 높게 하시고 그로 인해 주님이 계획하신 성공의 길을 가는 크리스천 리더로서의 꽉 찬 삶이 이루어지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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