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상처도 되고 경제적으로도 피해를 입은 나쁜 일이 있었습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그들을 응징하시고 벌하시기를 바랍니다. 대신 갚으신다 하셨으니 그렇게 하시리라 믿고 그들을 벌하시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지난 주에 만난 어떤 분이 저에게 한 말입니다. 그 분은 최근 있었던 자신의 일을 토로하며 로마서 12장 19절의 말씀을 인용하고 있었습니다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 물론 하나님께서는 불의를 참지 않으십니다. 그리고 그렇게 하신다 하셨으니 그렇게 하실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죽음에 처해지면서도 그들의 죄를 기억하시지도 말라, 용서해달라고 하던 스테판의 기도(행 7:60)와 예수님의 기도(마 23:34)가 기억해 보았습니다. 그 상황에서 그들의 죄를 기억도 말라고 하면서 용서까지 이야기하는 것은 참 이해가 되지 않는 그냥 성스러운 이야기입니다. 평범한 제가 그 Big Picture를 이해한다는 것은 참 어려운 일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위대한 어떤 용서와 사랑까지는 아니더라도 그저 단순한 어린아이의 투정 같은 접근은 가능할 것 같습니다. 그것이 바로 자신의 최근 당한 일을 이야기하며 하나님께 대신 갚아 달라는 기도를 하고 있다고 이야기하신 분에게 저는 “하나님께 그 사람 벌주라고 시간을 쓰시기 보다는 저는 다 용서했으니 그들을 기억도 하지 마시고 저를 기억 하시옵소서. 그를 벌을 주고자 시간 투자하시지 말고 차라리 그 시간을 저에게 주시어 저를 훈련하시고 복 주시옵소서.” 라고 기도하는 것이 어떠냐고 이야기하였습니다. 좀 어린아이 같은 이야기이지만 저의 솔직한 심정이었습니다. 내 아버지가 내 친구 벌을 주러 가기 보다는 나를 안아주는 것이 더욱 좋을 것 같다는 단순한 생각이었고 특히 그 아버지가 모든 것이 가능한 최고의 능력자일때는 더욱 그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그것이 나에게 범죄한 자들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주님만 바라보는 주님과의 관계 정립이라는 생각과 더불어 그것이 축복의 비결이라는 생각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가질 수 있는 Big Picture라는 생각이 드는 것입니다.
혹시 하나님께서 벌 주셨으면 하는 사람이 있으십니까? 하나님께서 그를 벌 주려고 그를 바라보는 그 시간에 차라리 나를 바라봐 주시면 어떨까요? 그 시간에 나를 한번 더 안아 주시면 어떨까요? 바로 그 생각이 드는 것입니다.
기도합니다.
“주님! 저에게 상처주는 이들을 용서 하시옵소서. 그들이 무엇을 하였는지 모르나이다. 그들을 용서하시고 기억도 하지 마시옵소서. 그 시간을 제게 주시어 제 영에 축복의 시간이 되게 하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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