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축복의 근원이 되고 있는가?


요셉이 애굽으로 팔려와 바로의 친위대장인 보디발의 집에서 종으로 있을 때의 그의 환경을 이야기하는 내용의 말씀입니다.  요셉은 그의 주인 보디발에게 인정받으며 그 집안에서 일하는 종으로서는 최고의 자리에까지 올라가게 됩니다.  아마도 주변 사람들이 보기에는 그는 나름의 성공을 거둔 사람이었을 겁니다.  왕의 안전을 책임지고 바로 옆에서 모시는 친위 대장의 집안에서 돌아가는 모든 일과 더불어 모든 재산을 책임지는 총무가 되었으면 당시의 일반 평민이 보기에는 부러울 만한 위치의 사람이 되었다고 해도 될 것입니다.  왕의 생명을 책임지며 가장 가까이에서 왕을 모시는 친위대장이 소유한 모든 소유물을 주관하는 자리이니 아마도 많은 사람들의 부러움을 사는 자리였을 것임에는 분명합니다. 

어찌 보면 그 위치는 현대의 상황과 비추어 보아도 큰 성공일 것입니다.  평사원으로 입사하여 기업의 모든 재산을 책임지고 운영하는 위치까지 간다면 그것은 성공신화가 될 것입니다.  그 위치는 분명 직장 생활 등의 경제활동을 하는 모든 사람들이 원하는 성공이 아닐까 라는 생각도 해보게 됩니다.  요셉은 평사원도 아니고, 팔려온 종으로 시작하여 그 자리까지 갔으니 그것은 분명 성공 신화입니다.  그리고 그의 모습을 통해 세상에서 성공하는 방법을 엿볼수 있게 됩니다.

여호와께서 함께 하시고 범사에 형통하게 하심이 보이더라.

그의 주인이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심을 보며 또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하게 하심을 보았더라. (창 39:3)”는 말씀을 통해 우리는 요셉의 평상시 삶을 볼 수 있습니다.  그의 삶은 여호와가 함께 하시는 것과 여호와가 형통하게 하시는 것이 보이는 삶이었습니다.  보디발은 애굽 사람이었고 나름의 이방신을 섬기는 다른 종교의 사람입니다.  여호와를 잘 모르는 사람, 그렇게 다른 신을 섬기는 보디발이 보기에도 요셉은 여호와가 함께 하는 사람이었고, 범사에 형통케 하심이 보이는 삶을 발견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요셉은 그의 삶을 통해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역사하심이 보여지는 삶을 살고 있었던 것입니다.  

말씀을 보며 다른 종교의 사람들조차도 “저 사람은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사람이야!”라고 인정할 수 있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 먼저라는 깨달음도 가지게 됩니다.  만약 “누가 보더라도 (주변의 다른 종교를 가진 사람들이라도) 좋은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으로 보여지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한다면 분명 요셉의 삶은 “YES”이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삶으로 가능해지는 여호와 하나님의 “범사에 형통하게 하심”이라는 축복의 결과물이 보여집니다.

여러분은 어떠세요?  “주변의 다른 종교의 사람들이 보기에도 당신은 좋은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으로 보여지고 있습니까?”라는 질문을 한다면 어떤 대답을 하실 수 있습니까?  솔직히 저는 자신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숨을 붙여 두시고 기회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며, 다시한번 새롭게 하심을 간구하는 기도와 결단을 해보게 됩니다.

여호와께서 요셉을 위하여 그 애굽 사람의 집에 복을 내리시므로

아브라함에게 하신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으리라 (창 12:3b)”의 말씀이 생각납니다.  바로 복의 근원이 되라고 하신 말씀입니다. 

요셉이 주인 보디발의 모든 소유를 관리하는 최고의 자리에 오른 후 보디발의 집에는 그의 집과 밭 등에 속한 모든 소유에 축복이 더해집니다.  그것은 보디발이 이뻐서가 아니라 요셉 때문에 주어진 축복인 것을 입니다.  말씀에도 분명히 “요셉을 위하여” 그 애굽 사람 보디발의 집에 복을 내리신다고 적혀 있습니다 (창 39:5). 

나로 인하여 내가 속한 공동체가 복을 받는다!  참으로 멋지지 않습니까?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시고 요셉을 통해서도 증명하셨던 것처럼 나의 존재가 주변 사람들에게 축복의 근원이 된다면 그 얼마나 아름다운 삶입니까?  나로 인해 내 가족이 복을 받고, 나로 인해 내 직장이 복을 받고, 나로 인해 내 사업체가 복을 받고, 나로 인해 내 교회가 복을 받고, 내 이웃과 국가가 복을 받는다면 나의 삶은 분명히 엄청난 가치가 있는 삶일 것입니다.  복을 주시는 주체가 되시는 하나님이 나로 인해 그 복을 그렇게 베푸신다는 것은 참으로 엄청난 결과인 것입니다.  사실 우리는 그런 삶을 위해 좋은 종이 되겠다, 좋은 자녀가 되겠다 기도하고 있습니다.  어찌보면 그렇게 복의 근원이 되는 성공 방정식을 우리는 이미 말씀을 통해 알고 있다는 생각도 듭니다.  그것은 “누가 보아도 ‘저 사람은 예수 믿는 사람이야!’, ‘하나님이 형통케 하시는 모습이 보여!’라는 칭찬의 소리를 먼저 듣는 것” 이기 때문입니다. 

그 집은 이단이라 돈 벌게 해주면 안된다?

얼마전 어느 분이 일하는 직장 사장을 알고 보니 이단 종파라며 그 식당에서 일하시는 어느 집사님에게 그 직장을 그만두라고 이야기하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 이단종파 사장이 돈 벌게 해주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그런 말은 사실 가끔 듣는 이야기입니다.  종교가 다르거나 종파가 다르니 그런 곳에서 열심히 일해서 돈 벌고 그 집이 잘되게 하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다른 종교의 사람이 잘되게 도우면 안된다는 논리입니다. 

물론 그 마음은 이해가 됩니다.  하지만 그런 논리라면 요셉은 보디발의 집에서 일찌감치 도망쳐 나왔어야 하고, 애굽의 총리가 되어 신처럼 숭배받는 애굽의 왕, 바로 우상 그 자체인 바로를 도와 흉년을 이기고 번성하는 국가로 만드는 일은 하지 말았어야 합니다.  하지만 요셉은 우상 숭배 집안인 보디발의 집에서도 축복의 근원이 되고, 스스로를 신처럼 숭배하라는 바로 왕을 도와 애굽을 구제하여 이끌어내는 위대한 총리가 되었습니다.  요셉은 우상의 나라 애굽 전체가 축복을 받는 축복의 근원이 된 것입니다.  말씀처럼 하나님은 “요셉 때문에” 보디발을 번성하게 하시고 애굽을 구하신 것입니다.

심기움에는 분명 이유가 있다.

크리스천 리더가 된 우리는 조심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써 나가시는 세상의 역사에는 우연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어느 곳에 심기운데는 분명 하나님의 이유가 있다는 것입니다.

심기움으로 인해 만들어지는 환경, 우상 숭배와 이단의 나라에서 종이 되어 살아가는 환경만 보고 그들에게 도움이 되는 행동을 해서는 안된다는 것은 참 위험한 결론입니다.  크리스천 리더가 가져야 하는 생각의 출발점은 환경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어야 합니다.  심기운 곳이 마음에 든다! 안든다! 의 판단을 섣불리 하는 것은 어찌 보면 하나님 중심이 아닌 나 중심의 범죄가 될 수도 있음 입니다.

지금 어떤 환경에서 일을 하던 분명 “그곳에 심으신 하나님의 뜻”이 있습니다.  그것에서 우리는 성공해야 합니다.  비롯 그곳이 이단과 우상이 있는 곳이라고 하더라도 그 곳에서 우리는 우리의 삶을 통해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증거하고 있어야 하고, 그 순종을 통해 하나님께서 형통케 하시는 모습이 우리의 삶을 통해 보여져야 합니다.  그러한 과정속에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고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요셉은 심기운 곳에서 최선을 다하여 심기운 곳에 축복의 근원이 되는 사람이었습니다.  보디발의 집에 심기운 그는 최선을 다하여 그 집의 축복이 됩니다.  왕의 소유를 관리하는 총리의 자리에 심기운 그는 또다시 그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여 애굽을 살리는 일을 합니다.  그렇게 심기운 곳에서 최선을 다한 그는 굶주리게 된 가족을 구하고, 예수님으로 이어지는 구원의 역사에 남게 되는 인물이 됩니다.  요셉은 그렇게 심기운 곳에서 하나님의 사람으로 증인이 되고, 그로 인해 형통케 하시는 축복을 누리며, 더 나아가 또 허락하신 주변 사람과 환경 즉 심기운 곳에 주어지는 축복의 근원이 되는 삶을 살았습니다.

요셉의 진정한 성공은 바로 그가 심기운 곳에서 주어진 사명에 최선으로 순종하며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증명하는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보디발의 집에서 최고의 자리에 오르고, 왕의 총리가 되어 애굽에 축복을 불러오는 그 모든 보여지는 것들은 과정에 불과합니다.  그가 삶의 우여곡절을 겪으며 인생의 바닥에서 최상의 자리까지 오르락내리락하며 끈임없이 반복하며 보여준 것은 여호와는 살아 계시며 그는 여호와를 섬기는 사람이라는 것이었습니다.  크리스천 리더의 성공 또한 바로 그것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렇기에 크리스천 리더의 생각과 질문의 출발점은 “어디에 심기였는가?”가 아니라 “왜 이곳에 심기였는가?”라는 것이 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절대권을 인정하며 사명을 받는 자의 우선되는 자세일 것입니다.  자신이 처한 상황이 아니라 그 상황을 허락하신 절대자 하나님의 뜻을 먼저 살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정리합니다.

주어진 직장이 이단이건, 우상 숭배하는 집단이건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어차피 우리가 사는 세상 자체가 죄로 가득 찬 세상이며 우리에게는 그 안에서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우리는 그들을 사랑해야 하는 사람들이며, 축복해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그들을 제자 삼아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중요한 것이 바로 그곳에 “심기운 나” 때문에 그곳이 축복받을 수 있는가? 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동행함으로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이 보여지는 당신의 삶, 그로 인해 하나님께서 형통케 하심이 보여지는 당신의 삶!  그러한 모습으로 당신은 당신이 심기운 그 공동체속에서 인정받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한 과정속에서 공동체에 속한 다른 사람들이 당신을 통해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볼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것이야 말로 크리스천 리더의 진정한 성공입니다.

질문해 보았으면 합니다.

.. 나 때문에 하나님의 복을 받는 사람은 누구인가?
.. 나 때문에 하나님의 복을 받는 조직, 공동체는 있는가?

당신 때문에 복을 받는 사람들, 조직과 공동체들이 더욱 많아 지기를 바랍니다. 

“어디에 심기였는가?” 보다 “왜 이곳에 심기였는가?”가 우선이 되는 사명 중심의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그 “왜?”가 성취되는 것이 바로 크리스천 리더의 진정한 성공이기 때문입니다.

기도합니다.

“주어진 환경을 되돌아보게 하심에 감사합니다.  바로 이곳에 심어 놓으신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게 하시고, 바로 이곳에서 하나님의 사람인 것이 증명되는 삶이 되게 하시옵소서.  그로 인해 그들도 주님을 발견하게 되는 좋은 축복의 근원이 되는 크리스천 리더의 삶을 살아 ‘착하고 충성된 종아!’라는 칭찬받는 자가 되게 하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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