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수아의 리더십 (3)

후세를 생각하는 리더십

그들에게 이르되 요단 가운데로 들어가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궤 앞으로 가서 이스라엘 자손들의 지파 수대로 각기 돌 한 개씩 가져다가 어깨에 메라. 이것이 너희 중에 표징이 되리라 후일에 너희의 자손들이 물어 이르되 이 돌들은 무슨 뜻이냐 하거든 그들에게 이르기를 요단 물이 여호와의 언약궤 앞에서 끊어졌나니 곧 언약궤가 요단을 건널 때에 요단 물이 끊어졌으므로 이 돌들이 이스라엘 자손에게 영원히 기념이 되리라 하라 하니라.

여호수아 4: 5-7

언약궤를 앞세우고 도강에 성공한 여호수아는 요단으로부터 돌 12개를 가져다 오늘밤 잘 곳에 두라는 여호와의 명령을 듣고 (여호수아 4:1-3) 열두 지파에게 지파 별로 돌을 가져다 쌓으라 전달합니다. 그리고 그는 그렇게 하는 이유(WHY)를 정확히 이야기 합니다. 돌을 쌓는 이유는 후손들에게 요단에서 하나님이 베푸신 기적, 즉 언약궤가 앞서가고 요단의 물이 끊어져 이스라엘 백성들이 도강에 성공할 수 있었던 여호와의 기적을 후세들이 기념하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드디어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는 관문인 요단강의 도강에 성공하고 이스라엘 백성의 가나안의 역사가 새롭게 시작되는 이 시점에서 여호수아가 후세에게 남기고 싶었던 기억은 자신의 업적이나 리더십, 영웅담이나 성공담이 아니었습니다. 본인이 얼마나 훌륭하며 여호와의 말씀을 잘 듣고 행하는 좋은 일꾼이었는지도 아니었고, 본인이 모세의 뒤를 이은 정통성 있는 리더였다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말씀을 자세히 보면 알 수 있듯이 돌을 세우는 이유에는 여호수아 본인의 이야기는 전혀 없습니다. 자신에 대한 이야기는 한 마디도 없이 모두 다 언약궤에 대한 이야기이고 그것을 후세가 기념할 수 있도록 돌을 세우라고 명령하고 있는 여호수아의 모습을 말씀 속에서 보게 됩니다.

공을 도적질하지 마라.

그가 후세에 전하고 싶었던 것은 언약궤가 앞으로 나아감에 때라 요단의 물이 멈추는 하나님의 역사이었습니다. 도강에 성공한 것이 하나님의 역사하심, 관여하심, 은혜일진대 그것을 자신의 공으로 조금이라도 돌리는 실수를 그는 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이 하나님을 경외하고 말씀에 순종하였으며 선택된 리더여서 그런 축복이 주어졌으니 모두 자신처럼 그렇게 하나님을 경외하고 말씀에 순종하여 선택 받는 자가 되어야 축복이 주어진다는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로 주시는 축복을 자신이 조금이라도 자격이 있어서 주신 것처럼 그 공을 도둑질하는 범죄를 그는 범하지 않았습니다.

아마도 현대를 사는 그리스도인 리더들이 가장 많이 하는 실수 중 하나가 바로 성공적 결과를 자신의 공으로 돌리는 것일 겁니다. 은근히 하나님의 축복을 운운하면서 자신이 기도를 많이 해서, 자신이 거룩한 삶을 살고 있어서, 자신의 하나님의 사람이라서, 자신이 전도를 많이 해서, 자신이 십일조를 잘 해서 등등을 이야기하며 하나님이 축복하신 것에 자신의 공도 있는 것처럼 이야기하는 경우를 가끔 보게 됩니다. 특히 세상적으로도 성공했다 인정받는 성도들이 간증처럼 하는 이야기 속에서 많이 듣는 것이기도 합니다.

물론 기도도 해야 하고, 말씀 데로 살아야 하고, 순종의 삶도 살아야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것 때문에 우리를 축복해야 하는 빚쟁이는 아닙니다. 축복은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이며 그리스도인 리더에게는 내세울만한 어떤 공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저 하나님께서 도구로 사용하심에 감사할 따름일 것입니다. 여호수아는 그렇게 축복은 자신의 공이 있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인 것을 알고 있는 리더였습니다.

그리스도인 리더의 성공은 한 세대를 위한 것이 아니다.

어떤 목표를 가지고 오늘 하루를 살고 계십니까? 그것이 무엇이던 그리스도인의 성공은 한 세대로 끝나지 않아야 합니다. 그리스도인 리더라면 그가 누리는 성공이라는 결과는 기억되고 후세에 전달되어 하나님의 역사하심과 인도하심을 기념하는 기록물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루를 살며 보여주는 언행이, 만드는 결과가, 삶의 질과 보여지는 모습들이 현세와 후세에 어떤 영향력을 끼칠지 생각하며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후세에 어떤 메시지를 전하고 싶은지에 대한 생각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며 그것은 후세가 어떤 삶을 살고, 어떤 축복을 받을 것인가 와도 직접적인 연관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더욱 중요한 문제입니다.

여호수아가 후세에 전하고 싶었던 것은 언약궤가 앞서가며 벌어진 일입니다. 자신의 리더십과 성공에 대한 멋진 전설 같은 이야기, 자신의 영웅담도 아니었고 성공담도 아니었습니다. 그는 언약궤를 앞세우고 도강을 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과 그들이 체험할 수 있었던 하나님의 기적에 관한 이야기를 후세가 기억하기를 바랬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인정하고 약속을 믿으며 행동으로 강을 건너던 선조들의 모습과 그들을 축복하며 기적으로 대답하셨던 하나님을 기억하기를 바랬던 것입니다. 그는 그것이 후세의 삶을 만들어 나가는 기준점은 하나님을 경외함에서 시작되어야 하며 (너희가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항상 경외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라. 수 4:24) 그것이 후세에게 축복의 통로가 될 것임을 알고 있었던 겁니다. 여호수아는 그렇게 자신의 영웅담이나 성공담에 박수를 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기준으로 후세가 살아가기를 바랬던 것입니다. 가나안에서의 새로운 이스라엘 역사를 열어가는 리더였던 여호수아는 그렇게 후세를 생각하는 리더십을 제공하고 있었습니다.

그리스도인 리더이십니까? 어떤 모습으로 기억되고 싶으십니까? 그것을 위해 어떤 경험을 구성원에게 제공하고 계십니까? 당신의 성공을 후세들은 어떻게 기념하면 되는 겁니까?

기도합니다.

성공을 허락하시되 내 자랑이 아니라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만 이야기하는 성숙함도 허락하소서. 후세에게 올바른 기준을 제시하는 기억을 유산으로 남기는 그리스도인 리더로서의 삶을 살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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